실크로드는 여러 문명의 충돌과 융화가 빚어낸 푸드로드였다. 말 그대로 비단길은 길목마다 온갖 맛있는 음식들을 숨겨두고 우리를 유혹했다. 아니 월궁(月宮) 항아(姮娥)나 눈매가 깊고 서늘한 위구르 여인처럼 매혹적이었다. 그 흥취를 살려 긁적여둔 메모로 실크로드 음식일기를 작성해 본다.
여행 첫날, 베이징(北京)에 도착한 후 시안(西岸) 출발 전 몇 시간을 798거리에서 보냈다. 폐군수공장지대였던 이곳이 가난한 예술가들의 작업장에서 중국 현대미술의 근거지로, 세계적인 중국 화가들의 배출 요람에서 서울 청담동보다 월세가 비싼 화랑가로 변한 것처럼 문명의 충돌은 자본의 칼을 휘두르며 현재도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798거리의 커피맛은 씁쓸했다. 그 개운찮고 깔깔한 입맛은 시안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급히 들른 베이징공항 뒷골목 식당으로 또 이어졌다. 커다란 식당 안은 손님 수만큼 많은 종업원들이 끊임없이 차 주전자를 들고 다니며 차를 따르고 있었고, 주고받는 음성은 또 얼마나 큰지 마치 실내수영장에라도 들어선 듯했다. 허둥지둥 그 소란함과 탑승시간에 쫓기듯 중국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둥근 식탁에 차려진 푸석한 밥과 청경채를 비롯한 몇 가지 야채볶음, 오향장육 등은 앞으로의 여정 동안 어김없이 연착을 해댄 중국 비행기처럼 하루에 한 번은 꼭 우리 앞에 차려질 터였다.
교자연(餃子宴)은 시안의 명물이다. 섬서박물관과 진시황 병마용갱을 다녀와 허기진 우리는 그 형형색색 빚어낸 고기만두를 보며 탄성을 질렀다. 청나라 말 서태후(西太后)가 의화단 난을 피해 시안으로 피신해 와 있을 때 만들어지고 그 종류가 무려 200여 가지나 된다고 조선족 가이드가 아주 자랑스러워하며 권한 음식이다. 하지만 그 예쁜 모양새와 빛깔에 홀려 젓가락을 바쁘게 가져갔지만 양고기나 향차이(香菜) 향과 맛에 놀라 결국 많은 종류의 교자연을 그대로 남기고 말았다. 역시 씁쓸했다. 그래도 식위민천(食爲民天), 음식을 가장 중요한 것이라 여기는 중국 사람들이니까 다음에는 '의자 다리를 제외한 온갖 맛있는 음식들'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그 기대를 여덟 시간 동안 침대열차를 타고 란저우(蘭州)에 도착해서 아침으로 먹은 우육면(니우로우미엔)과 야크 수육, 삶은 계란이 충족시켜 주었다. 청진(淸眞) 팻말이 붙은 회족(回族)식당에서였다. 우육면은 원나라 때 칭기스칸의 중화정책으로 탄생되었고, 한우보다 다소 질긴 감이 있는 야크(Yak)는 티베트 고산지대의 검은 소라고 했다. 육수는 깔끔하고 맑으며 국수 면발은 쫄깃하고 고추기름과 마늘 잎사귀, 향차이 고명으로 빛깔도 산뜻했다. 그리고 메모장에 '순수'라는 말처럼 서역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음식은 점점 담백해졌다. 화덕에서 갓 구워낸 난(밀빵)이나 좀 불쌍했지만 베이징 덕처럼 껍질이 바삭하고 노린내가 나지 않던 통양구이에서 우리는 계속 마주치는 소수민족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음식들의 충돌과 융화를 체험하고 있었다. 메모장에 '실크로드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 같은 문명 지도(地圖)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웨이(武威)의 동파육과 둔황(敦煌)의 설산토장(낙타발 요리), 빠리쿤 초원에서의 염소치즈를 지나 마침내 샨샨(鄯善)에 들어섰을 때 수많은 과일들이 또 향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꿀에 절인 대추, 납작 복숭아, 밍밍한 무화과, 작은 사과, 등속의 몇 시간씩 달리는 버스 간식으로 시들해져갈 때였다. 사막의 도로가에 잔뜩 쌓아둔 하미꽈(哈密瓜)를 보며 첫 신기루를 볼 때처럼 함성을 질렀다. 당연히 차를 세워 수박, 참외, 멜론 맛이 동시에 나는 그 사각사각하고 달콤한 과일을 한 입씩 급하게 베어 먹기 시작했다. 호박처럼 썰어 빨랫줄에 말린 오가리는 울릉도 호박엿맛 같다고나 할까, 무척 달았다. 하미꽈는 청의 건륭제에게 하미(哈密)의 왕권을 위임받은 하미왕이 공물로 보낸 것인데, 그 맛에 반해 신하에게 과일 이름을 묻자, 그저 하미에서 진상한 과일이니 신장의 하미꽈라 답했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샨샨의 특산물, 과식하면 열을 내는 작용으로 입과 목이 터지거나 코피가 난다니 탐식은 절대주의할 것.
투루판은 특히 '포도의 왕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온 도시 외곽이 벌집 형태의 포도 건조장이었고, 말린 포도의 종류 또한 그들 얼굴모습만큼 다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야시장에서 먹은 쇠꼬챙이에 꿴 양꼬치 구이와 시원한 칭따오 맥주 맛은 잊을 수 없다. 식탁에만 앉으면 외쳐댄 '삥더 삐즈 싼 거'(시원한 맥주 세 병!)는 우리의 구호이기도 했으니까. 고장난 버스 탓에 시간에 쫓겨 어느 허름한 노천식당의 위구르 노부부가 만들어낸 볶음국수의 구수한 밀가루맛과 소스는 평생 잊을 수도 다신 찾아가 먹을 수도 없을 것이다. 미안해하며 고장난 버스의 운전기사가 식탁 위에 그대로 주머니칼로 쑹덩쑹덩 썰어주던 뜨뜻미지근한 그 수박도!
글:박미영(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사진: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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