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라고 하면 언제부터인가 '뮤지컬 도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에 걸맞을 정도로 몇 년 전부터 뮤지컬 열기가 뜨거운 도시가 바로 대구이다. 그러나 이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빛 좋은 개살구'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서울이나 외국의 작품을 그대로 대구에 들여와 공연하는 뮤지컬 '소비시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뮤지컬 공연의 대부분 수익이 서울 등으로 빠져나가고 지역 공연계 발전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목소리도 쏟아진다.
이 같은 대구 뮤지컬 공연계에 최근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장소만 빌려주던 대구 공연장들이 앞다퉈 직접 뮤지컬을 제작하고 있는 것. 바야흐로 대구가 뮤지컬 콘텐츠를 갖춘 '뮤지컬 생산공장'(Musical Factory)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공연장, 뮤지컬 제작에 눈을 뜨다
수성아트피아(관장 배선주)는 지역 공연장 처음으로 뮤지컬 제작에 뛰어들었고 그 결과물인 '엄마와 젓가락'을 17일까지 공연하고 있다. 수성아트피아 사업기획부 강두용 부장은 "지난주말 가족 관람객들이 주류를 이루며 매 공연 평균 50% 이상의 점유율을 보였다"며 "창작 초연작으로는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수성아트피아는 이 작품을 선보이기까지 작품 기획에서부터 제작, 홍보, 유통까지 맡았다. 지난 2월에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지역 출신의 남녀 배우도 뽑아 작품성을 높이려고 애썼다. 배선주 관장은 "이번처럼 공연장 단독으로 뮤지컬을 제작하는 것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다. 이 작품을 꾸준히 보완해 전국적인 브랜드로 만들고 전국의 공연장 무대에 올릴 계획"이라고 했다. 나아가 수성아트피아는 앞으로 공연 브랜드화를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꾸준한 투자를 통해 지속적인 사업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대구학생문화센터(관장 장태환)도 전국 시도 교육청 최초로 교육과정과 연계한 교육프로그램 국악뮤지컬 '시집가는 날'을 자체 제작해 공연하고 있다. 교과서에 실린 희곡을 맞춤식 공연으로 제작한 국악뮤지컬 '시집가는 날'은 출연진과 제작진 모두 지역 인력을 최대한 활용해 뮤지컬 생산공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작품은 학생들에게 희극의 해학과 흥미를 전할 뿐 아니라 센터가 공연과 학습을 겸하는 체험의 장으로 교육적 역할을 하는 데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시집가는 날'은 11월 4일까지 대구시내 초'중'고등학생 6만1천여 명을 대상으로 총 43회에 걸쳐 공연된다. 장태환 관장은 "그전까지는 공모를 통한 심사로 작품을 선보였는데 학생들 의향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며 "올해부터 창의적 체험활동이 본격화되면서 교과서 내용을 뮤지컬로 제작해보면 어떨까 싶어 준비했는데 학생들로부터 호응도가 높아 뿌듯하다"고 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집행위원장 배성혁)도 자체 제작한 뮤지컬 '투란도트'를 6월 DIMF 초청작으로 내놓는다. 2009년 초부터 구상한 '투란도트'는 원래 오페라로 유명한 작품인데 이번에 뮤지컬로 자체 제작한다는 것. 지난해 12월 '트라이아웃'(공식 무대에 앞서 관객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한 실험 공연)에 이어 이번에 정식 공연할 예정이다. DIMF 곽종규 운영팀장은 "저작권과 사업자등록을 모두 DIMF에서 가진 만큼 대구 제작 작품으로 손색없다. 부산이나 울산 등에서 공연 계획을 협의 중이며 앞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 판매할 방침"이라고 했다.
◆'뮤지컬 생산공장' 걸음마 뗐다
대구에서는 종전에도 뮤지컬 제작이 있었다. 특히 뮤지컬 '만화방 미숙이'는 대구 토종 뮤지컬로서 서울까지 수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소규모 대구 극단에서 기획에서부터 제작, 홍보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다 보니 전국 브랜드로 꾸준히 이어가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불고 있는 뮤지컬 제작 바람은 무대를 내주기만 하던 공연장들이 이끈다는 점에서 과거와 사뭇 다르다. 그만큼 홍보나 기획, 마케팅 등에서 유리하다는 평가다. 극단 뉴컴퍼니 이상원 대표는 "공연장의 마케팅력과 자본력이 예술인의 콘텐츠와 결합해 윈윈할 수 있다. 기존에는 예술인이 기획, 제작에서 홍보까지 책임지니까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금처럼 역할을 분담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공연장들은 전국의 공연장들과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어 작품 판매에도 그만큼 수월할 수 있다는 것이 지역 공연계의 반응이다. 이미 서울에서는 지역의 이 같은 움직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 과거 대구의 주요 공연장들이 대관과 기획을 하는 정도여서 지역 공연문화의 정체성을 외면하는 측면이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지금 같은 움직임은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평가다. 앞으로 뮤지컬뿐 아니라 연극과 오페라 등 문화 전반에 이 같은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를 계기로 지역의 인적 공연 인프라를 키우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현순 대구연극협회장은 "공연할 때마다 배우나 스태프를 구하기가 어려워 애를 먹는다"며 "앞으로 공연장들이 인적 인프라, 즉 지역의 배우나 제작진들을 키우고 활용하는 역할에도 이바지를 한다면 대구의 공연문화는 큰 전기를 맞을 것이며, 나아가 대구가 명실상부한 공연문화도시가 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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