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아무런 증상도 없이 건강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숨졌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곤 한다. 운동을 하거나 잠을 자다가 돌연사하는 경우다. 이런 죽음의 원인은 대부분 심장병이다. 심장병에는 관상동맥 질환, 심부전, 판막질환, 부정맥 등이 있다. 하지만 통계상 돌연사하는 10명 중 8명은 동맥경화증에 의한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증 등 관상동맥 질환에 의해 일어난다.
동맥경화증은 동맥혈관 내벽에 기름 찌꺼기(콜레스테롤)가 끼면서 혈관이 점점 딱딱해지고 좁아져 피흐름에 장애를 가져오는 질환을 말한다. 심장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왕관모양의 혈관을 관상동맥이라고 한다. 여기에 동맥경화증이 와서 생긴 병을 '관상동맥 질환'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되면 산소 및 영양분이 심장 근육이 원하는 만큼 공급되지 않아 흉통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경우를 '협심증'이라고 부른다. 동맥경화증이 터져서 혈전(피가 굳어서 피떡이 된 상태)이 관상동맥을 완전히 막아버려 심장근육이 죽는 경우를 심근경색증이라고 한다.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죽음의 질병, 심근경색에 대해 알아본다.
어느 월요일 오후, 50대 김주원(가명) 씨. 의사인 그는 누구보다 활기차게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주말이 지나 월요일 오후쯤 되면 피곤함을 느낄 만 한데 그의 얼굴에서 어두운 그림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대기 환자가 잠시 끊겼을 때 3년 전 진료실에서 일어났던 일이 다시 떠올라 그는 다시 한 번 가슴을 어루만졌다. 김주원 씨의 심장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내 심장에 무슨 일이?
3년 전 그는 평소 정기검진으로 건강을 관리했고, 술과 담배도 하지 않아 누구보다 건강을 자신했다. 하지만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조금 높다는 말을 듣고 규칙적인 운동으로 살을 빼기로 했다. 어느 휴일, 여느 때처럼 아침운동을 하러 나갔지만 평소보다 기운이 없고 숨이 찬 느낌이 있어 그 날 운동은 포기하고 귀가했다. 가슴통증도 없었다.
이튿날 오후 진료 중 피곤함을 느낀 그는 대기 환자가 잠시 끊어진 동안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오후 4시쯤, 진료실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진료실로 뛰어들어간 간호사는 책상 위에 쓰러진 김주원 씨를 발견했다.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호흡을 되살리기 위해 기도삽관을 한 뒤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곧바로 심전도 검사를 한 결과, '심실세동'이 나타났다. 심실세동은 심전도 검사에서 파형은 감지되지만 심장은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즉시 조치하지 않으면 곧 심장 정지에 이를 수 있는 위험한 부정맥. 체외형 제세동기로 심장에 전기충격을 주고, 수차례 심폐소생술을 한 끝에 겨우 맥박이 돌아왔다. 하지만 혈압은 여전히 낮았다. 의식도 없고 자발호흡도 약한 고위험군에 속했다. 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게 급선무. 의료진은 일차적 '관상동맥 중재시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좁아지거나 막힌 관상동맥을 다시 뚫기 위해 심장수술을 하지 않고 풍선이나 스텐트를 집어넣어 치료하는 시술. 사타구니 대퇴동맥으로 카테터(2~3㎜ 굵기의 플라스틱 호스)를 집어넣어 동맥을 따라 심장까지 관을 닿게 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 '혈관 나이'가 젊어야
사진상에서 관상동맥 중 좌전하행지(심장 왼쪽 앞쪽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동맥)가 혈전으로 꽉 막힌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즉시 가는 유도철선을 막힌 혈관에 통과시킨 뒤 혈전 흡입용 카테터를 이용해 가능한 많은 혈전을 제거했다. 혈전을 없앤 뒤 완전히 막혀있던 관상동맥이 일부 뚫리면서 혈관 폐쇄의 주범인 파열된 관상동맥 경화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혈류는 여전히 느린 상태. 유도철선을 따라 풍선 카테터를 넣은 뒤 혈류를 유지하기 위해 수차례 풍선확장을 시도했다. 마지막으로 스텐트(철망)을 삽입해 혈류 확보에 성공할 수 있었다. 김주원 씨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이틀간 중환자실에 머문 뒤에 비로소 의식을 되찾았다. 일부 심실벽 운동이 저하됐지만 심장기능 손상은 크지 않아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정기검진도 거르지 않았고, 직업이 의사인 탓에 누구보다도 건강을 자신했던 김주원 씨. 하지만 돌연사의 무서운 위협 앞에 예외일 수 없었다. 이처럼 심근경색은 소리없이 다가오고,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흔히 동맥경화증은 노년층에나 해당하는 질병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10대나 20대부터 동맥경화증은 시작한다. 흔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바로 동맥경화증에 이 말이 적용된다. 생물학적인 나이가 어려도 이미 동맥경화증은 상당히 진행됐을 수 있다는 말이다. 관상동맥 질환이 무서운 이유다. 아울러 동맥경화증이 심한 사람일수록 급성 심근경색증이나 돌연사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심근 경색증의 절반 이상은 협심증 병력이 전혀 없었던 사람에게 발생한다. 결국 동맥경화증에서 중요한 것은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혈관 나이'인 것이다.
◆갈수록 늘어가는 심장혈관 질환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9년 사망원인통계 결과'를 보면, 단일 질환으로는 뇌혈관 질환이 가장 높은 사망률을 보인다. 심장 질환으로 인한 사망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하지만 통계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질환의 추세다.
뇌혈관 질환은 통계가 시작된 1999년 이후 출혈성 뇌졸중(뇌출혈)이 감소하면서 인구 10만 명당 72.9명에서 52명으로 20.8% 감소했다. 이에 반해 심장 질환 사망은 인구 10만 명당 38.9명에서 45명으로 오히려 2% 증가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연령별 사망률. 한창 경제적 활동이 활발한 30~50대에 심장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뇌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보다 높다. 이는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 젊은 나이에도 심장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생물학적인 나이만 믿고 흡연,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스트레스, 운동부족 등 위험요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
관상동맥 질환의 위험 요소들은 동맥경화증을 가속화할 뿐 아니라 경화부위를 취약하게 만든다. 결국 쉽게 파열돼 급성 심근경색증과 돌연사를 일으킨다는 것. 젊다고 방심할 수 없다. 자신의 심장은 안녕한지 다시 한 번 돌아볼 때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자료 제공=대구경북 권역 심뇌혈관질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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