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폐암 환자 고교생 민성이

"가슴 속 종양 빨리 떼내고 대학 가야죠"

'종격동 악성 신생물'을 앓고 있는 민성(가명'17)이는 쉬지 않고 기침을 해댔다. 엄마 김지영(가명'41) 씨는 "차라리 내가 저 병을 빼앗아 왔으면 좋겠다"며 아들을 안고 눈물을 흘렸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콜록 콜록."

민성이(가명'17)의 기침이 다시 시작됐다. 어깨가 들썩이고 목에서 쇳소리가 날 때까지 기침을 해대는 아들 녀석을 보다가 엄마는 등을 돌리고 만다. "차라리 내가 병에 걸리는 게 나을 것을…."

엄마 김지영(가명'41) 씨는 아이의 병을 빼앗아 오고 싶은 심정이다. 민성이는 '종격동 악성 신생물'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폐와 심장 중간 부위에 악성 종양이 생기는 이 병 때문에 민성이의 폐에는 10.8㎝의 거대한 종양이 자라고 있다. 종양이 점점 커질수록 민성이의 꿈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엄친아' 민성이

민성이는 '엄친아'다. 공부면 공부, 글쓰기면 글쓰기, 주변 친구들에게 인기까지 좋은 아들이다. 김 씨는 민성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받은 상장과 성적표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뒀다. 두툼한 하늘색 파일을 넘기자 '다독(多讀)상' '발표상' '수학경시대회 우승상' 등 다양한 상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성적도 좋다. '37명 중에 5등'. 중학교 3학년 성적표에는 아들의 자랑스러운 석차가 검은 펜으로 적혀 있었다.

민성이와 김 씨에겐 서로가 전부다. 8년 전 남편과 갈라선 뒤 김 씨는 민성이를 위해, 민성이는 엄마를 위해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왔다. "속 한 번 안 썩이고 참 착하게 잘 자라줬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김 씨는 자신의 전부를 앗아갈 수도 있는 아들의 병을 아직도 인정하지 못했다.

지난달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민성이가 계속 기침을 해댔다. 단순한 감기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일주일 동안 고열이 지속됐다. 감기치고 오래간다고 생각한 김 씨는 민성이를 데리고 지난달 21일 동네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왼쪽 폐와 심장 쪽이 하얗다며 큰 병원에 가라고 하셨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겠지 생각했는데." 그렇게 찾은 대학병원에서 폐에 달걀만 한 종양이 있다는 소식과 함께 '종격동 악성 신생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3월의 지독한 봄이 시작됐다.

◆"다 내 탓이에요"

민성이는 곧장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병원에서는 "종양이 너무 커서 수술할 수 없다"며 항암치료부터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항암제가 몸으로 들어가면 민성이는 울부짖었다. 다른 암환자들도 병실에서 나이가 가장 어린 민성이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안타까워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고등학생이 가여워서였다.

일주일간 1차 항암 치료가 끝나자 민성이의 식사량이 3분의 1로 줄었다. 몸속에 음식이 들어가면 토했다. 요즘은 바나나와 요구르트, 죽처럼 자극이 없는 음식만 먹고 있다. 170㎝에 71㎏이었던 민성이는 지금 살이 쏙 빠졌다. 체중계에 올라갈 힘조차 없다.

김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기도 수원의 한 대기업 전기 공장에서 납땜을 했던 자신의 과거 때문에 아들이 희귀한 병에 걸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돼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다. 김 씨는 "내가 20년 전 일했던 공장에서 민성이와 같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 많다는 뉴스를 봤을 때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민성이의 병이 나 때문인 것 같다"며 가슴을 쳤다.

김 씨는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민성이와 함께 병원에 있는 성당에 찾아갔다. 민성이는 세례를 받고 '미카엘'이라는 세례명까지 받았다. 어차피 생명이 인간의 손을 떠난 일이라면 신에게 매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적을 바라는 것 외엔 답이 없잖아요."

◆민성이의 꿈

김 씨도 건강한 몸이 아니다. 김 씨는 2008년 뇌하수체에 생기는 뇌종양인 '뇌하수체 선종' 진단을 받고 아직도 약을 입에 달고 산다. 낮에는 학부모회 활동, 저녁에는 식당 일을 하며 아빠와 엄마 역할을 동시에 했다.

고된 생활에 몸은 정직하게 반응했다. 2008년 4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왼쪽 시력이 약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때 찾아간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때부터 다른 직장을 찾지 못하고 정부 보조금에 의존해 살게 됐다. "지금도 오른쪽 눈을 가리면 세상이 뿌옇게 보여요." 김 씨는 오른손으로 눈을 가렸다. 보이지 않는 눈처럼 두 가족의 미래도 희뿌연 것 같아서일까. 한쪽 눈을 감싼 손가락 사이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식구의 살림살이는 초라하다. 사글세 250만원짜리 방 두 칸짜리 집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대구는 벌써 여름인데 이 집에는 차가운 기운이 감돈다. 두꺼운 점퍼를 껴입고 이불을 덮은 민성이는 바닥에 누워 TV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 나아서 친구들을 만나야 한다"며 주변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지내는 민성이는 이불 속에서 꿈을 꾼다.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공부하고 싶어요. 빨리 나아야죠." 민성이의 책상 위에는 영어 단어집과 수학, 과학 수험서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민성이는 언제쯤 책상에 앉아 다시 저 책장을 넘길 수 있을까.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