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 프롤레타리아 해방에 목숨을 바친 여성 혁명 투사였지만 개인적 취향은 매우 부르주아적이었다. 귀한 손님을 초대하면 꼭 캐비어(철갑상어알)와 샴페인을 대접해야 했고 방을 얻을 때도 프롤레타리아 구역은 되도록 피했다. 가구와 그림, 그릇 등 일상의 소품도 자신의 엄격한 고급 취향을 통과해야 했다. 이런 호사 취미를 유지하려다 보니 항상 돈에 쪼들렸다. 프롤레타리아 해방이라는 공적 이념과 사생활의 부르주아적 취향 간의 이 같은 괴리는 당시 좌파 도덕주의자의 날 선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봐줄 만하다. '현대 부조리극의 창시자'로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산 극작가이자 시인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삶은 더했다. 민중을 위한다면서 자신의 지갑을 부풀리는 수완은 놀라웠다. 동독 정부는 오스트리아 국적이었던 그에게 극단과 극장을 제공하고 많은 후원을 했지만 자기 작품의 저작권은 모두 서독 출판사에 맡겼다. 그에 따라 자기 작품의 제3국 출판 수익과 공연 로열티는 모두 화폐 가치가 높은 서독 화폐로 받았다. 이 돈은 그의 스위스 은행 계좌로 들어갔다. 그러나 겉으로는 철저히 프롤레타리아인 척했다. 그는 노동자처럼 보이기 위해 노동자 복장을 하고 다녔다. 실소가 나오는 것은 그 옷이 일류 재단사가 정성 들여 디자인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행각은 좌파 내부로부터 "브레히트가 노동자처럼 보이기 위해 손톱 밑에 때를 끼게 만드는 데 매일 몇 시간씩 허비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브레히트는 그런 행색을 하고서 파리에 가면 항상 리츠칼튼 호텔만 이용하고 손톱 밑이 시커먼 손으로 최고급 샴페인만 마셨다.
'강남좌파'라는 신종 좌파가 유행하고 있다. 강남좌파란 경제적으로는 강남 사람처럼 부유하지만 의식은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이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과거의 좌파와 다른 점은 경제적 토대와 의식의 괴리를 감추지 않고 "그래 나 강남좌파다. 그래서 어떻다는 거냐"며 적극적으로 커밍아웃하고 있다는 점이다. 배부른 좌파가 일부러 배고픈 척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소리다. 강남 사람이라고 해서 의식도 강남에 머물러야 한다는 법은 없다. "지식인의 계급성은 그의 물적 토대가 아니라 어느 편에 서겠다고 결심하는 의지에 달려있다"(카를 만하임)는 말도 있듯이 정의와 양심에 대해 생각이 많은 지식인은 특히 그래야 한다.
많이 배우고 가진 것도 많은 사람들이 약자를 위해준다니 반갑기는 한데 어쩐지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냉정하게 말해 강남좌파는 강남을 낳은 사회경제 시스템의 수혜자다. 생각을 왼쪽으로 한다고 해서 그런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지금의 풍요로움이 사회 시스템이 준 선물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일군 결과라고 말하고 싶은가. 그렇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재능과 노력이 꽃필 수 있도록 해준 것도 바로 현 체제가 아닌가. 강남 사람은 경제가 어려워져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 다달이 신용카드 대금과 세금 고지서에 골치를 썩일 일도, 자녀 학원비와 대학 등록금 마련에 허리가 휘지도, 노후 대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다. 민생의 고통을 안다고 하지만 체감하지 않은 앎이다.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계급적 이익과 분리된 의식이라는 것은 잘해야 부유층의 딜레탕티즘이고 더 나쁘게 말하면 교묘한 허위 의식이다.
강남좌파라는 말은 일종의 비아냥이다. 그런데도 '그래 나는 강남좌파다'라는 선언은 어떤 의미일까. 의식적으로만 좌파이고 현실에서는 강남의 단물은 계속 빨겠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런 태도는 진보 진영과 좌파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강남이 상징하는 사회경제적 테두리에 갇혀 있는 한 강남좌파는 영원히 '강남'이란 수식어를 떼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깨려면 '나 말고 너부터' 식으로 공적 영역에 대해서만 약한 자를 위한다고 할 게 아니라 자신의 생활에서부터 강남이란 말로 대표되는 것들을 버려야 한다. 그럴 용기가 있는가.
강남좌파를 자임한 한 교수는 그런 뜻을 비치긴 했다. "강남좌파들의 생활과 이념이 정확히 일치 않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직시하고 있으며 그 점에서 자신도 자성하고 이를 정정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 생각이다. 생각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 생각은 그만하고 실천하라.
鄭敬勳(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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