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항 백지화에는 수도권 발전과 국익이라는 2개의 논리가 동원되었다. 전자는 지방 허브 공항이 생기면 수도권 발전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발전은 양립할 수 없다는 수도권 언론과 정치인의 독선이다. 후자는 신공항 백지화를 국익으로 포장한 이명박 대통령의 책임회피 논리이다. 이 두 논리를 합치면 수도권 국익론이 되며, 현 정권의 수도권 중심주의이다. 그런데 다음 정권의 주인이 될지도 모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신공항 재추진을 밝혔다. 그러면 박근혜 의원은 국익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수도권의 이익이 한국 전체의 국익이 아니며, 국익을 위한 백지화도 자가당착임이 분명해진다.
수도권 국익론에 대해 지방은 무엇을 했는가. 지방 언론은 치열하게 그들과 싸웠으나, 지역의 한계에 부닥쳤다. 이럴 때 중앙에서 활동하는 지역 출신 정치인의 역할이 필요하다. 현 정권의 집권 기반을 제공한 이 지역 정치인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컸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대에 배반당했다. 그들은 장관을 만나고, 성명서를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면서 죽은 자식 불알 만지러 온 듯, 신공항 재추진 궐기대회에는 얼굴을 내밀었다.
박근혜 의원의 계속 추진론을 등에 업고 그들은 지금 의기양양하다. 내년 선거에서 신공항 건설을 위해서는 여당 국회의원이 필요하다고 거품을 물 것이다. 득표 활동에는 지역 숙원사업인 신공항 재추진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이렇다면, 영남지역 정치인은 신공항 백지화를 내심 반기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에게는 신공항보다 표가 더 중요하다. 그들이 수도권 국익론에 대응하지 않다가 백지화 이후 목소리를 높이는 의도가 엿보인다. 유권자들은 속는 셈 치고 또 그들에게 기대를 걸지 모른다.
여기에는 고약한 지방과 중앙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방의 발전은 중앙정부와의 파이프에 달려 있었다. 대형 국책사업을 유치하면 지역경제가 살아난다고 하는 뿌리 깊은 개발주의 관념이다. 중앙정부의 자원배분 기능이 워낙 강해, 지방은 중앙정부와의 연결 파이프가 필요했다. 그래서 지방의 정치는 오랫동안 지역을 떠나 있어 지역 사정을 몰라도, 중앙의 고위직이었거나, 중앙의 '거물'과 친분이 있다는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한나라당에 계속해서 몰표를 준 것도 중앙과 강력하고 지속적인 파이프를 유지하는 것이 지역 발전에 유리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집단적 동류의식에 매몰되어 누구도 지역을 위해 총대를 메지 않았다.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말처럼, 한나라당 일색인 그들은 경쟁 없이 뭉쳐 있기만 하면 되었다.
지역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 선거 때만 얼굴을 내미는 그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수도권에 쉽게 동화된다. 그들에게 선거는 지나가는 정거장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수도권이 더 중요할 것이다. 신공항을 위해 그들이 총대를 멜 이유가 없다. 다음 선거를 위해 어떡하든 신공항의 불씨를 살려 놓고, 중앙정치에 합류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구를 대표한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번 분당 보궐선거에서 "15년 분당 토박이"를 외쳤다. 15년간 대구에서 국회의원을 하면서 분당 토박이가 된 그에게 우리는 허망한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정치인은 이와 다를까?
지방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지방의 존재 가치를 내세우는 '반란'이 필요하다. 지방의 존재가 수도권의 발전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알도록 해야 한다. 서울의 파이프에 입을 대고 단물을 받아먹으려 하지 말자.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권자가 정치를 바꾸어야 한다. 지역을 떠난 중앙의 '거물'이 지방의 대변자가 될 수 없다. 선거 때 내려와 공중전을 하고 떠나는 철새가 아니라, 지방의 논리를 확산시키는 텃새 정치인을 키우자. 동류의식을 깨고 지방을 위해 경쟁하고 협력하는 정치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신공항 백지화 이후 영남지방은 쇠락의 위기에 있다. 앉아서 고사(枯死)하기보다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사는 길이다. 지방의 발전이 균형 잡힌 국익을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계명대학교 교수·일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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