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내에 응급환자 발생 방송이 다급하게 울렸다. 외래환자 접수처에서 환자가 쓰러진 것. 급히 심폐소생술을 받고, 응급실로 옮겨졌다. 쓰러진 사람은 40대 오정태(가명) 씨. 일주일 전부터 명치 부위에 통증이 시작돼 대학병원에 왔다. 택시 운전기사인 그는 3년 전부터 당뇨병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 중이었다. 당뇨의 원인은 불규칙한 식사와 운동부족으로 늘어난 뱃살. 식사가 일정치 않아 시간이 날 때마다 폭식을 했고, 하루 종일 운전을 하다 보니 운동도 부족했다. 주변에서 살을 뺄 것을 수차례 권유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다가 급기야 당뇨 진단까지 받은 것. 젊은 나이에 당뇨약을 매일 먹어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 보기에도 신경 쓰이는 일. 당연히 약은 먹는 둥 마는 둥 소홀해졌다. 더욱이 당뇨는 음식도 가려 먹어야 하는데 직업상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뇨 환자인 오 씨는 왜 갑작스레 병원에서 쓰러진 것일까?
◆심장의 경고에 귀 기울여야
대학병원에 오기 일주일 전 점심시간. 그날도 오 씨는 시간에 쫓겨 급하게 지하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명치 끝에서 뭔가 답답한 느낌이 밀려들었다. 이내 체한 듯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고, 목이 조여오는 느낌을 받았다. 숨 쉬기도 어려워지면서 이마에 식은땀까지 맺혔다. 계단 난간을 잡으며 주저앉았는데, 난간을 잡고 있던 팔과 어깨 쪽에도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은 20분가량 지나서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튿날 위 내시경을 받은 오 씨는 위궤양 진단을 받아 약을 먹었지만 체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결국 명치 부위 통증이 생긴 지 일주일 만에 병원에 온 것.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온 오 씨. 맥박도 없는 상태에서 심전도검사 결과 치명적인 심실세동이 나타났다. 곧 심장이 멎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 전기충격을 주고 심폐소생술도 수차례 실시한 결과 겨우 맥박이 돌아왔다. 다시 시행한 심전도검사에서 광범위한 급성 심근경색으로 진단됐다. 일차적 관상동맥 중재시술이 필요했다.
그러나 문제는 환자의 반복되는 심실세동과 저혈압. 환자는 혈전(피떡) 때문에 심장근육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완전히 막힌 상태였다. 심장근육에 괴사가 진행돼 치명적인 부정맥을 낳게 된다. 갑작스런 심장 기능 저하로 혈압이 유지되지 않아 전신 조직에 산소와 영양분이 공급되지 않는 이른바 '심장 쇼크'가 온 상태. 신체 조직에 치명적인 손상이 올 수 있으며, 대개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발생한다. 이처럼 '심장 쇼크'에 빠진 환자들은 상황을 지켜보는 것 외에 달리 손을 쓸 방법이 없는 것일까?
◆'심장 쇼크' 여전히 병원 내 사망률은 높아
이런 환자들에게는 '대동맥 내 풍선 펌프'나 '경피적 체외순환 보조장치' 등이 도움을 줄 수 있다. 대동맥 내 풍선 펌프는 적절한 약물치료에도 반응이 없는 환자들에게 특수한 풍선을 대퇴동맥을 통해 대동맥 내로 집어넣은 뒤 심장박동에 따라 확장과 수축을 반복해 혈압을 유지시켜 주는 장치. 특히 심장기능이 심하게 떨어진 심근경색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경피적 체외순환 보조장치는 치명적인 심실세동이나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심장과 폐 기능을 대신하는 것으로, 심장을 쉬게 해 기능 회복을 돕는 장치다. 최근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대퇴동맥을 통해 비교적 쉽게 시술할 수 있다.
오 씨의 심실세동은 전기충격과 약물치료로 일단 안정됐다. 하지만 '심장 쇼크'는 여전히 지속되는 상태. 즉시 가는 유도철선을 혈전으로 꽉 막힌 혈관에 통과시킨 뒤 수차례 혈전을 제거했다. 풍선 카테터를 집어넣어 수차례 혈관을 확장하고, 스텐트(철망)를 삽입해 피가 흐르도록 했다. 하지만 심장기능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이후 수차례 심실세동도 재발했다. 게다가 항응고제를 사용하다 보니 위궤양 출혈이 생겼고, 인공호흡기를 쓴 탓에 폐렴까지 불러왔다. 2주일간 생사를 넘나드는 치료 끝에 겨우 의식을 회복했다. 그는 평소 건강에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퇴원하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퇴원 수속을 준비하던 중 새벽에 다시 심정지가 발생했고, 때늦은 후회를 뒤로한 채 결국 숨을 거뒀다. 실제로 의료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장 쇼크' 상태까지 온 환자들의 병원 내 사망률은 여전히 50%를 넘는다.
◆급성 심근경색 '시간이 생명'
급성 심근경색증 환자의 치료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역시 심장 손상 정도. 이는 심근경색이 발생한 뒤 '얼마나 빨리 치료를 받았나'에 달려 있다. 심혈관이 막힌 상태를 오래 방치해 두면 심장근육 손상도 점점 커지고, 치명적인 부정맥이나 심근 파열 등 생명을 위협하는 합병증을 피할 수 없다. 대개 급성 심근경색은 증상 후 3, 4시간 내에 치료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내 '심근경색증 등록 현황' 자료에 따르면, 흉통 등 증상이 생긴 후 병원을 찾는 평균 시간은 312분으로 5시간 이상 걸렸다. 병원을 찾는 시간이 실제로는 상당히 늦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환자 중 75% 이상이 응급이송차량이 아닌 자가용(35.4%) 버스(2.0%) 도시철도(0.2%)로 병원을 찾는다는 것. 심지어 자전거(0.15%)나 걸어서(7.7%) 병원에 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되면 치료 시기가 늦어지고, 병원 도착 전 2차 손상의 우려도 높아진다.
이처럼 심장병 환자들이 병원에 늦게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증상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앞서 오 씨의 사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대학병원 방문 일주일 전 점심시간에 명치 부위 통증을 느꼈다. 이는 전형적인 심혈관 질환의 증상이다. 숨이 막히고 체한 듯한 느낌이 들며, 특히 팔과 어깨 부위가 아픈 특징도 갖는다. 심장은 꾸준히 위험신호를 보냈지만 환자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대부분 오 씨처럼 위나 장 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속단해서 치료시기를 놓치게 된다.
특히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흡연, 비만, 운동부족 등 위험인자를 많이 가지고 있는 고위험군일수록 심장의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하다. 의심스러우면 지체하지 말고 병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빨리빨리'는 한국인의 급한 성격을 대변해 주는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이는 말. 하지만 급성 심근경색증 치료에서 이보다 더 권장해야 할 미덕도 없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자료제공=대구경북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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