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병휘의 교열 단상] 곁불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인간과의 관계 형성이다. 가족이든 이웃이든, 서로의 관계에서 웃고 우는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숱하게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사는 것 같지만, 진정으로 가깝게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렇게 몇 안 되는 가까운 사람들 안에서 상처를 주고받으며 고통을 겪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나 않았는지 항상 살펴야 한다. 지금도 누군가가 나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아파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말과 행동에 더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 우리는 자신이 받은 상처의 고통보다 내가 상대방에게 준 상처의 아픔이 더 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대하는 상대방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는 삶이 되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곁불'과 '겻불'에 대해 알아보자. '곁불'은 얻어 쬐는 불, 가까이하여 보는 덕을 뜻하며 "그는 정류장 옆에서 곁불을 쬐며 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곁불에 게 잡을 생각한다."로 쓰인다. '겻불'은 겨를 태우는 불로 불기운이 미미한 것을 뜻하며 "질화로에 남은 겻불도 꺼졌다." "금방까지 시퍼렇던 군중들의 서슬이 겻불 사그라지듯 사그라졌다."로 활용한다.

'곁불'의 '곁'은 어떤 대상의 옆 또는 심리·공간적으로 가까운 데를 말하며 "아이는 엄마 곁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제 곁에서 도움을 주셨다."로 쓰인다. '곁'과 비슷한 뜻을 지닌 '옆'은 사물의 오른쪽이나 왼쪽의 면 또는 그 근처를 말하며 "옆으로 눕다." "옆에서 맞장구치다."로 활용한다. '곁'은 '옆'보다 넓은 의미로 대상을 중심으로 한 근방이나 가까운 주변 모두를 뜻한다.

우리가 뭔가를 얻고자 한다면 곁불에 기대기보다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애쓴 보람 없이 헛일이 될 때가 있는데 이를 '헛물을 켜다'라고 한다. "배가 떠나기도 전에 붙잡히면 본전도 건지지 못하고 헛물만 켜는 셈이다."로 쓰인다. '켜다'는 불을 일으키다, 쪼개다 등의 뜻도 있지만 물이나 술 따위를 단숨에 들이마시다라는 뜻도 있다. 그런데 '헛물을 켜다'를 '헛물을 키다'로 표기하면 안 된다. '키다'는 '켜다'의 피동형인 '켜이다'의 준말로 켜고 싶어지다라는 뜻이다. "저녁을 짜게 먹었더니 물이 자꾸 켜인다." "짠 것을 먹었더니 물이 자꾸 킨다." 로 쓰이다 보니 혼동한 것이다.

상대방을 대할 때 상처받지 않게 해주고 배려하는 것,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믿고 그 사랑을 놓치지 않는 것, 그래서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떠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대에게 곁불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성병휘 교정부장 sbh12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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