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전기리그. 삼성은 패배를 몰랐다. 4월 말까지 롯데에 1경기 차 리드를 잡았던 삼성은 5월 한 달간 16승5패(승률 0.762)로 '승승장구'하며 독주했다. 2위 OB에 5경기 차로 앞섰다. 신록의 5월을 보낸 삼성은 12경기를 남겨두고 우승 고지 점령을 향한 초읽기를 시작했다. 매직넘버는 '10'. OB는 삼성과의 남은 6경기를 역전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으나 겨우 1승을 챙기는 데 그쳤다. 삼성의 기세가 OB의 뒤집기를 한낱 '몽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해 6월 12일 삼성은 김시진을 선발로 내세워 롯데를 15대3으로 대파하고 37승1무14패로 전기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다. 1984년에 이은 전기리그 2연패, 그리고 3번째 기별 우승이었다. 하지만 삼성은 배부른 사자로 남길 바라지 않았다. 남은 3경기마저 독식하며 기어이 40승을 채웠다. 프로 출범 이후 어떤 팀도 밟아보지 못한 40승 고지였다. 승률 0.741에 2위와는 11경기 차. 최다경기차 우승이었지만 삼성은 기뻐하지 않았다.
삼성 김영덕 감독은 '종합승률제'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달리는 사자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1985년 한국시리즈의 방식은 이전과는 달랐다. 전기 우승팀은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고, 후기 우승팀과 통합 승률 1위 팀이 플레이오프를 거쳐 맞붙는 다소 복잡한 방식이 도입됐다. 이는 1984년 삼성의 '져주기 파문'의 폐단을 보완한다는 명분 아래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고안해낸 묘책이었다.
프로 출범 3년을 맞은 1984년까지 KBO는 전-후기리그 1위 팀끼리 한국시리즈를 열어 그해 최강자를 가리는 방식이 가장 간편하며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완벽한 제도는 삼성에 의해 허점을 드러냈다. 전기 우승팀이 후기 우승팀을 밀어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지 못한 것이다.
1984년 전기리그를 우승한 삼성은 후기리그 중반, 우승권에서 멀어지자 한국시리즈 파트너 고르기에 나섰다. 1984년 8월 16일 광주 원정 경기서 해태에 2패를 당하자 김영덕 감독은 이튿날 숙소인 광주 신양파크호텔서 코치들과 파트너 선택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서 김영덕 감독은 최동원만 봉쇄한다면 손쉽게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계산 아래 전기리그 4위 롯데를 최종 낙점한다. 그러나 롯데 창단 감독을 지낸 박영길 코치는 생각이 달랐다. 최동원이 완투가 가능한데다 페이스 조절에도 능해 삼성 타선이 절대 만만히 볼 수 없는 투수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귀를 닫았다.
삼성은 후기리그 마지막 두 경기를 남겨두고 전략회의 결과를 실행에 옮겼다. 9월 20일 롯데는 27승1무20패로 1위, OB는 1경기 뒤진 26승1무21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을 사정권 안에 두고 있었다.
22, 23일 롯데는 부산에서 삼성과, OB는 제주에서 해태를 맞아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다. 승차가 뒤진 OB가 절대 불리했지만 롯데의 상대가 삼성인 만큼 희망을 품을 만했다.
그러나 김영덕 감독은 OB의 실낱 같은 희망을 짓밟아 버렸다. 9월 22일 오후 4시, 롯데는 삼성선발 진동한을 무너뜨려 우승 문턱에 한발 다가서려 했다. 하지만 삼성 타선은 초반 불을 뿜으며 롯데의 애간장을 녹였고, 지기로 작정한 김영덕 감독마저 당황케 했다.
그때 오후 2시 시작한 OB와 해태 간 제주경기 소식이 김영덕 감독에게 전해졌다. OB의 11대9 승리. 김영덕 감독은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선수들을 한탄하며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 2회까지 무안타로 호투하던 진동한을 마운드에서 내리고 송진호, 성낙수로 마운드를 갈아가며 롯데 타선에 불이 붙기를 재촉한 김 감독은 주루플레이 실수를 가장해 병살을 당하는 한편 쉽게 잡을 수 있는 타구를 안타로 만들어주는 연기에 몰입했다. 3개의 병살타와 3개의 도루 실패, 수비 땐 10개의 볼넷과 8개의 도루를 허용하며 7대0이던 경기를 9대11로 만들어버렸다. 거친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김영덕 감독은 다음날에도 전략을 수정하지 않았다. 양일환을 희생양 삼아 3회까지 6점을 내주고 권기홍, 박영진 등 후기리그에 한 번도 등판하지 않은 투수를 내세워 롯데 타선에 불을 붙였다. 팔꿈치가 고장 난 이선희를 패전처리로 활용, 전날보다 좀 더 세련된 모양새를 갖추며 8대15로 져 롯데의 후기리그 우승을 도왔다. 제주에서 OB가 해태를 6대2로 꺾은 건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시나리오대로 롯데를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맞았지만 김영덕 감독의 작품은 삼성의 3대4 패배로 끝나며 화룡점정을 완성치 못했다.
KBO는 부랴부랴 한국시리즈 방식을 바꾸고 1985년 전기 우승을 거머쥔 김영덕 감독은 '판단 착오'가 빚어낸 전년도의 아픔을 삼키려 후기리그까지 제패해 완전무결한 1985년을 장식하려 강행군을 이어갔다.
8월 6일부터 롯데와의 5연전 승리는 김영덕 감독에게 한국시리즈 무산과 '종합승률제'를 무용지물로 만들 기회를 열어줬다. 이 승리로 4.5경기로 롯데를 쫓던 삼성은 선두 롯데를 0.5경기차로 제치고 순식간에 1위에 나섰고 김영덕 감독은 김시진, 김일융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완전우승의 카운트다운을 세기 시작했다.
9월 17일 삼성은 부산원정에서 롯데를 7대4로 꺾고 35승16패를 기록,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후기우승을 차지한다. 김영덕 감독의 뜻대로 1985년 한국시리즈는 무산됐다.
삼성은 전'후기 완전우승뿐 아니라 홈런 이만수, 타격 장효조, 다승 김시진'김일융 등 각종 개인 타이틀도 휩쓸어 호화군단의 위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은 "1985년 삼성은 초반부터 상대를 몰아쳐 5회 이전에 사실상 경기를 끝냈다"고 했다. 김영덕 감독은 1982년 원년 OB 우승 후 두 번째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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