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노태우와 박정희

얼마 전 서울 강남의 한 식당에서 SK그룹 임원과 만난 적이 있다. 공식적인 자리는 아니었지만 이야기 주제는 자연스레 SK와 대구와의 관계로 이어졌다. 이 임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구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뜬금없는 얘기를 했다.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대구시는 지난해 SK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SK C&C와 투자유치 양해각서(MOU)를 맺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임원은 지난해 말 열렸던 SK그룹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가 모두 참석한 회의에서 최 회장이 '대구를 이해할 수 없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뭐 하는 동네인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고 전했다. 왜 그랬을까?

그가 밝힌 이유는 이랬다. 대구시가 지난해 그동안 방치하다시피한 대구 동구 팔공산 자락에 있는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관리'복원은 물론 주차장과 진입도로 건설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SK그룹 전체가 들떴었다고 했다. 최 회장은 장인인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장인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던 차에 대구시가 나서줬으니 얼마나 고마웠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대구시가 일부 반대 여론 등에 떠밀려 발표 사흘 만에 돌연 주차장과 진입도로 건설은 '없던 일'이라고 치부하면서 최 회장이 크게 노했다는 후문이었다.

대구시의 첫 발표가 있은 직후 SK는 그룹 차원에서 노 전 대통령 생가 주변 개발에 나설 생각이었던 듯싶다. 실제로 시의 발표 기사가 나간 다음 날 SK그룹 본사 홍보실 임원이 매일신문사를 직접 찾아 대구시의 의지와 향후 계획을 확인하기도 했었다. 결국 최 회장의 기대감이 산산조각난 결과가 대구가 눈독을 들였던 SK케미칼이 안동으로 간 것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란 게 SK를 잘 아는 기업인들의 '해몽'이다.

물론 12'12사건을 일으킨 주역 중 한 명이고 300억원가량의 비자금 추징금도 미납한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옹호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전'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공과가 모두 있을 수 있겠지만 대통령은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또 한 시대를 주도한 인물로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역사의 한 모습이 된다.

지역 출신의 또 다른 대통령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경상북도와 구미시의 대처는 대구와는 완전히 다르다. 구미시청은 물론 지역민들까지 합심해서 대통령의 생가 보존은 물론 동상, 홍보영상관, 공원 건립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역 출신의 대통령을 지역이 챙기지 않는다면 대신 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근 만난 경북도 한 고위 공무원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가 경북에 있었다면 다양하게 활용했을 것'이라는 '호언장담'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SK에너지가 조만간 1조9천억원의 투자처를 모색 중이란다. SK그룹은 현재 주력인 SK텔레콤과 SK에너지의 국내 산업이 사실상 포화상태에 이르러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에 나섰는데, 그 분야가 2차전지 등의 신에너지 분야로 정했다는 것이다.

SK를 잘 아는 지역 기업인에 따르면 최 회장이 여전히 장인의 생가가 있는 대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기업인은 "대구가 삼성에 하는 노력의 반의반만 SK에 보여준다면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SK와 한 번 더 인연 맺기를 시도하자. 생산도 전국 꼴찌요, 소비도 7대 도시 중 최하위라는데, 경제 두 바퀴가 모두 푹 꺼진 대구를 이대로 놔둬서야 되겠는가?

정욱진기자(사회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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