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지방 난민, TK 난민

"15년째 분당사람으로 살고 있는 강재섭입니다."

경기 분당을 4'27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강재섭 한나라당 후보가 2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그는 "1996년 구미동으로 이사를 왔었다. '정치는 집 앞에서 시작된다'는 신념으로 분당과 동행하고자 나섰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강 후보는 선거전에서 '15년 분당 토박이'론을 거듭 강조했다. 대구시민들이 잘 알다시피 강 후보는 1992년부터 2008년까지 대구(서구)에서 내리 4선을 한 지역 국회의원이었다.

이 때문에 대구KYC(한국청년연합)는 최근 '강재섭 후보에게 보내는 공개 질의서'를 통해 "강 후보의'15년 분당토박이'주장을 지켜보는 대구시민들은 황망할 따름"이라면서 "당신의 지역구 대구 서구는 강재섭 후보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곳이냐, 대구의 아들과 분당 토박이 과연 어느 것이 진실이냐"고 물었다.

대구 서구 주민들도 "대구에서도 무늬만 지역 국회의원이었지 지역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이냐. 서구가 제일 낙후된 지역이 됐는데 앞으로는 대구가 고향임을 말하지 마라"며 격앙된 분위기다.

강 후보의 블로그에도 "그랬능교. 그카민서 서구에서 16년 동안 뺏지 달았능교. 대구(서구)지역에서 보면 선거 때만 내려오는 전형적인 철새가 아닌지요"라는 댓글이 붙었다.

강 후보 같은 이들의 선택처럼 지방은 임시 거처이자 또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는 무대에 불과했다. 이들은 바로 지방을 떠돌다 단물이 빠지면 서울로 가버리는 '지방 난민' 'TK 난민'들인 셈이다. 4년짜리 떠돌이 인생이다.

'TK 난민'들은 대구경북에서 고향과 연고를 내세우지만 지역에 착근할 사람이 아니다. 언제든지 서울로, 수도권으로 떠날 사람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이자 대구경북의 미래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상당수 지역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각급 기관단체장 등 일시적으로, 또 필요에 의해서만 대구경북민임을 자처하는 'TK 난민'들은 대구경북의 정책을 결정짓거나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내놓은 국회의원 재산공개 내역에 따르면 대구지역 국회의원의 75%가 대구에 집이 없거나 소형 아파트를 빌려놓고 실제로는 대구에 거주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서울 강남지역에는 부동산을 대거 보유하고 있었다.

대구경북 국회의원 27명(대구 12명, 경북 15명) 중 12명은 이른바 '강남 3구'로 불리는 서울 강남'송파'서초구에만 적어도 집 한 채씩은 갖고 있었다. 4선의 현역 의원은 대구에 집이 없는 대신 서초구에만 아파트 2채를 소유하고 있었다. 나머지 다른 의원들도 서울과 수도권에 집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지역출신일지라도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주요 자리에 오른 사람들도 수도권과 서울 이익에 매달려 대구경북에 대한 고민과 애정은 찾아 보기 힘들다. 다른 지역에서 주로 생활하다 최근 취임한 한 기관장의 경우 평일에는 근무를 하지만 금요일 오후만 되면 집으로 가기 바쁘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TK 난민'들은 당선만 되면, 또 목표한 것을 이루고 나면 지역을 외면하다시피하고 있다. 이들은 10년 뒤, 20년 뒤에도 지역에 남아 있을 사람들이 아니다. 당연히 자신들이 결정한 정책이 성공할지, 아니면 실패할지 고민이 적을 수밖에 없다. 'TK 난민'들이 결정한 정책에 대한 수혜도 있겠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구경북 시도민들의 몫으로 남게 된다.

'TK 난민'들은 공천이나 기관장에 오르기 위해 서울에만 얼쩡거리며 자기살길 찾기에 바쁘다. 지역을 위한 정책도 '정치적'으로 결정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비롯됐다.

대구경북 주민들은 언제까지 'TK 난민' 아니 뜨내기들에게 자신들의 미래와 운명을 맡겨둘 것인가. 'TK 난민'을 양산한 것은 대구경북 시도민들이다. 내년에 치러지는 총선과 대선이 좋은 기회다.

대구경북의 도약과 발전을 위해서는 내부 혁신부터 이뤄야 한다. 'TK 난민'들에게 시도민들의 절규를 알아차리게 해야 한다. 대구경북에 착근하고 있는 지역민들이 중심이 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자생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내년을 준비하자.

이춘수(사회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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