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작 영화 리뷰] 안티 크라이스트

참혹하게 비튼 '에덴의 동산' 원죄의 진실은

안티 크라이스트
안티 크라이스트

헨델의 장엄한 아리아 '울게 하소서'가 흐르는 밤. 내리는 눈을 보며 부부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 부드러우면서 격정적인 육체적 탐닉에 빠져 있는 그 순간, 갓난아이가 침대를 빠져나와 창턱에 오른다. 눈송이가 아래로 한없이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창턱에 선 아이의 위태로움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부는 쾌락에 뜨거운 입김을 내뿜는다. 그리고 곧이어 아이는 추락하고 만다.

덴마크의 거장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안티 크라이스트'의 프롤로그는 고속 촬영으로 찍은 흑백영상을 아리아에 맞춰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준다. 아리아의 선율과 소담스러운 눈송이가 한없이 아름답지만, 그 속에 깔린 이면에는 원죄의 씻을 수 없는 어두움으로 가득차 있다. 프롤로그로도 이미 충격적이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어둠 속의 댄서' '도그빌' 등을 통해 세계적 거장으로 떠오른 라스 폰 트리에의 신작 '안티 크라이스트'는 그의 환상적이고 기괴한 영상미학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관객의 영혼에 상처를 입혀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도발적인 영상에 소름이 끼친다.

아이를 잃은 부모는 고통스럽다. 특히 엄마(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자신의 쾌락 때문에 아이가 죽었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입원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점점 증세가 심해지자 심리치료사인 남편(윌렘 데포)이 직접 나선다. 마음의 병이 깊어 약물치료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안 그는 아내를 데리고 숲으로 간다.

영화는 프롤로그-비탄-고통(혼돈의 지배)-절망(여성 살해)-세 거지-에필로그 등 6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비탄에 빠진 이들이 혼돈의 고통에 절망하고, 씻을 수 없는 원죄적 한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극단으로 치닫는다.

감독은 숲에 간 한 남자와 여자를 등장시켜 둘의 세밀한 감정을 그리면서 갖가지 상징을 통해 인간 본성을 파고든다. 여자는 금단의 사과를 먹은 이브처럼 불안에 떨고, 남편은 면죄된 아담처럼 이성을 잃지 않는다. 마녀처럼 미쳐가는 여자를 보며 남편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두려움에 맞서라는 주문만 할 뿐이다. 어두운 내면의 숲 속에서 펼쳐지는 둘의 대립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영화는 원죄의 이름으로 가해진 여성 잔혹사를 성기훼손까지 치달으면서 충격적으로 그려 내주고 있다. 현대판 아담과 이브의 걷잡을 수 없는 애증이다.

밀턴의 '실낙원'에 뿌리를 둔 이 영화의 제목이 '안티 크라이스트'인 것은 이성인 크라이스트에 대척에 있기 때문이다. '에덴의 동산'은 끔찍한 기운이 가득 찬 숲으로 상징되며 거기에서 인간 내면의 지옥도를 그려준다.

다양한 기법을 통한 영상과 음향효과가 뛰어나지만 정서는 처절하고 참혹하고 선정적이다. 성기 노출에 살을 뚫는 쇠꼬치에 피도 뚝뚝 떨어진다. 충격적이었던 여성 성기 훼손장면 등 몇 장면은 국내 개봉판에서 삭제됐다. 국내 버전은 2009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된 감독 버전보다 20분가량을 삭제한 판본이다.

이 영화로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샤를로트 갱스부르의 연기가 소름끼치도록 리얼하다.

워낙 원초적 본능과 종교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서 논란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잔혹한 묘사에 대한 호불호도 있다. 그러나 상징과 은유, 포스트모던한 화면 구성 등 영화적 가치 또한 높은 편이다.

영혼에 상처를 입을 자신이 없으면 관람하기 힘든 작품으로, 여느 영화의 문법과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해둔다. 5월 5일 동성아트홀 개봉. 러닝타임 107분. 청소년 관람불가.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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