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작업의 정석

작업의 정석

작업은 무언가를 창조하는 메커니즘, 그 과정이다. 순수한 몰입의 순간이다. 그것은 무언가에 몰두해 구축하고 만들어내는 매혹적인 일이다. 작업은 작품뿐 아니라 연애, 수작, 로비, 비즈니스에도 있고 조폭, 요리사, 달인의 김병만에게도 있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다 작업이다. 그러나 '무리한' 작업은 업을 짓는(作業) 일이기도 해서 인과론으로 보면 고통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작업은 성취와 고통이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쉬지 않고 작업해 왔으니 그동안 쌓인 내 업도 만만찮을 것이다. 이 업을 쌓는 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 유유자적할 수 있는 시간이 전시 기간이다. 오랫동안 준비한 전시회를 오픈 하면 전시기간 내내 아주 심심해진다. 이때가 작가에겐 재충전의 기회이며, 느긋하게 자신을 쉴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사실 작업할 때보다 작업 이후의 이 순간이 더 설레고 아름답다. 여유로운 할리데이, 하나님의 선데이다. 땀 흘린 후의 휴식은 달콤한 법이다.

청도에 처음 들어가서는 건달 흉내를 내어보았다. 건달(乾達)은 조폭하고는 다르다. 하늘에 닿아 임금처럼 되는 일이 건달이다. 한마디로 남의 눈치 안 보고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양 기운이 충만한 직업이다. 그래서 나도 매일 놀면서, 내 맘대로 빈둥거려 보았다. 아, 그런데 노는 일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더니, 노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피로가 극도로 밀려올 때쯤, 작업을 슬슬 시작했는데, 그제야 몸과 마음이 균형을 잡고 피로도 물러갔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노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 행위도 없는 것이 무위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연스런 흐름을 타고 잘 노는 일이 무위, 건달, 작업 그런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만든 세상을 보고 매우 흡족해 '보기에 좋다'라고 했다(작가들의 작업도 '자뻑'이라는 의미에서 신의 영역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그리고 열심히 작업한 하나님은 피곤해서 하루 쉬었다. 창조하고 나면 좀 쉬어줘야 한다.

'빅뱅'은 우주라는 의식이 참을 수 없는 무료함을 못 이겨 섬광처럼 터져 나오며 물질화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 영감은 우주의 충동이고, 모든 있음은 이 창조적 의식이 흥에 겨워 폭발해 버린 흔적이 아닐까? 작업은 창조라는 뇌관을 폭발시키면서 시작된다. 우리는 작업에서, 생활 속에서, 매 순간 빅뱅이라는 창조적 긍정, 그 노리쇠의 추진력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매일춘추'라는 충동 덕분에 올 봄은 참 행복했다. 더구나 이 뇌관은 연쇄폭발을 일으켜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쓰게 했고, 이 소설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작업을 연계해 나가는 가슴 설레는 비전을 가지도록 도와주었다. 매일신문에 감사를 전한다.

리우/미디어설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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