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만 하여도 가슴 뛰는 단어가 '신록'(新綠)이다. 앙상한 가지에 새잎이 돋아나면서 서서히 물드는 연초록 빛깔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롭다. 짙은 녹음(綠陰)을 준비하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여린 잎에서 우리는 삶의 역동을 느낀다. 5월이 계절의 여왕인 것은 신록이 있기 때문인가 보다. 그런 5월이 어느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수필가 이양하의 '신록 예찬'이 새삼 그리운 계절이다. "사실 이즈음의 신록에는, 우리의 마음에 참다운 기쁨과 위안을 주는 이상한 힘이 있는 듯하다. 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나의 욕망과 굴욕과 고통과 곤란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별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말하자면, 나의 흉중에도 신록이요, 나의 안전(眼前)에도 신록이다."
그리고 서정주 시인이 신록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어이할거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에 이미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 번 날 에워싸는데/ 못 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머리털 같은/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가졌어라."
시인 김상옥은 아예 신록의 싱그러움을 물에 빗대 노래했다. "물에도 수심이 있으면 절로 물빛이 어리우듯이 우리의 염려도 그것이 멀고 깊으면 깊을수록 그만큼의 농도로 차츰 짙어지던가 보다. 하지만 아무래도 깨쳐지질 않는다. 그동안 얼마를 자맥질하던 물속에서 이제 막 숨 가빠 솟아오르는 찰나! 물 묻은 얼굴을 훔친다. 귀밑이고 목덜미고 앞가슴이고 싱싱한 방울이 타 내린다. 굴러 떨어진다. 눈시울을 껌적여도 산들한 속눈썹은 그냥 축축하다." 향토 시조시인 이영도의 신록은 이렇다. "트인 하늘 아래 무성히 젊은 꿈들/ 휘느린 가지마다 가지마다 숨 가쁘다/ 오월은 절로 겨워라 우쭐대는 이 강산."
5월의 신록을 얼마나 가슴속에 주워 담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닌가.
윤주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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