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로 진지를 쌓고, 핏물이 시냇물처럼 흘렀다는 얘기는 맞을 수도 있겠다'
이번 주 '기자와 함께'는 먼저 호국 영령들의 희생에 대한 감사와 숙연함으로 고생을 기꺼이 감내했다. 배고픔과 안개 낀 빗속 산행이 육체적으로 힘들게 했다. 하지만 고생 속에 보람도 있는 법. 기자가 찾은 26일에도 가산산성 헬기장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또 시신 2구를 발굴했다. 허벅지 쪽 대퇴부뼈와 갈비뼈, 심지어 턱뼈가 고스란히 땅 속에 파묻혀 있었다. 나무 아래 쪽이었다.
국방부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단은 이달 들어 벌써 시신 40구를 찾아냈다. 유해 발굴한 시신이 벌써 5천 구라고 하니, 당시 전사자들의 엄청난 희생이 짐작된다. 특히 낙동강 전선을 지키기 위해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로 상징되는 유학산은 시신이 산더미를 이뤘다는 말이 사실임을 6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도 그 흔적들이 땅 속에 남아 증명하고 있다. 대구예술대학교(총장 김정길) 총학생회와 함께한 유해발굴 현장체험에 기자도 함께 나서 생생한 현장을 들여다봤다.
◆초반부터 길 잃고, 허기지고
대구예술대는 이날 오전에는 50사단 칠곡대대와 함께 유해발굴을 위한 교육과 임시봉안소 참배, 감식소 참관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리고 오후 1시부터 가산산성 헬기장 인근에서 주먹박으로 점심을 때우고, 오후 4시까지 유해발굴 현장을 체험하는 일정을 갖고 있었다.
기자는 오후 1시부터 체험을 함께하기로 하고, 가산산성 헬기장 인근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러나 길을 헤맸다. 1시간 넘게 올라가 헬기장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고,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평소 굶어본 일도 없는 터라 점심 한 끼가 그렇게 절실한 적이 없었다. 배는 고프고 일행들과 만나지도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았다. 마침 한 등산객을 만나 길을 물어보니 저 너머 할미바위에 군인들이 유해 발굴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래서 또 할미바위를 찾아가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다시 헬기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제서야 일행들이 헬기장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일용할 양식인 주먹밥도 올라왔다. 비닐 봉지에 담긴 볶음밥 뭉치인 그 주먹밥이 꿀맛이었다. 그리고 생수 한 모금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다같이 유해발굴 현장으로
주먹밥을 먹고 나니 칠곡대대 오향주'황주영 대위가 유해 발굴의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그리고 해마다 국방부와 함께 유학산, 매봉산을 비롯한 이곳 일대에서 6'25 전사자 유해발굴로 얻은 성과와 오늘의 발굴현장에 대해서도 간단한 브리핑을 해줬다.
학생들과 산꼭대기 인근에 있는 유해 발굴 현장으로 이동했다. 올해는 140여 명의 신청자 중 26명이 선발됐다. 유해 발굴 현장 참여도 경쟁률이 5대 1을 넘겼다. 그 경쟁률을 뚫고 기자와 만난 이보영(22'여'방송연예과 4년) 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가하는 행운을 누리게 됐다"며 "산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이 힘들지만 한 번 와보면 앞으로 꿈을 이루는데도 큰 힘을 준다"고 말했다. 전역하고 복학한 이종형(22'방송연예과 2년) 씨도 "천안함 사태로 인해 긴장 속에서 군복무를 했으며, 전역 한 달 전에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휴가도 가지 못했던 기억이 선하다"며 "유해발굴 현장체험에 와보니 다시 한 번 안보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지 절감하게 된다"고 했다.
비오는 날에 산성 인근 산비탈을 오르는 힘든 산행이었지만 함께 오르는 대학생들이 있어 큰 위로(?)가 됐다. 학교 관계자와 학생들의 표정에는 힘든 내색을 찾을 수 없었으며, 오히려 전사자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 같았다.
◆누군지 모를 시신 2구를 애도하며
헬기장에서 10여 분 정도 더 산행을 했다. 비가 와 땅이 질퍽한데다, 길도 가파르고 험해 여대생들은 주변에서 손을 잡아주는 훈훈한 풍경도 연출됐다. 주변에 땅을 팠지만 유해는 없는 현장들이 이곳저곳에 있었다. 조금 더 가니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유해발굴 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 Line'이라고 적힌 노란색 테이프가 유골만 남은 시신 2구 주변에 둘러쳐져 있었다. 이곳은 주로 고고'인류학 등을 전공한 국방부 소속의 유해 발굴 감식단 병사들과 간부들만 출입이 허락되는 곳이었다. 기자도 체험을 하고자 안에 들어갈 것은 제안했지만 단번에 거절당했다. 생각해보니 당연했다. 이곳에 아무나 들어가게 되면, 유골이 훼손될 수도 있는데다 기자의 DNA도 채취돼 혼란이 가중돼 유골 처리가 제대로 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국방부 소속 이형심 상사는 기자에게 주변에서 허드렛일하는 것 정도가 도와주는 일이라고 알려줬으며, 일행 역시 노란색 테이프 밖에서 유골 발굴현장을 보고 이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기했다. 2구의 유골 형체가 누구나 짐작 가능케 할 정도로 땅에 묻혀 있었으며, 주변에 군화 밑창 등 군용물품도 나왔다.
일행이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학생 2명이 플루트를 꺼내고, 악보를 폈다. 이들은 가산산성 꼭대기 인근 유해 발굴 현장에서 '비목'을 연주했고, 기자를 비롯한 학생들은 6'25 전쟁 때 고통스럽게 죽어간 두 영혼에 대한 묵념을 했다. 이 두 유골을 그날 중에 모두 수습해 유골함에 담고, 다시 태극기로 그 유골함을 감싸 봉안소로 옮겨간다는 것이다. 일행 모두 가산산성 하산길에 평소와는 다른 애국심이 절로 불끈불끈 솟았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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