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재의 행복칼럼] 나가노(長野)

지난겨울 일본 나가노에 놀러갔다. 도쿄 사는 아들이 나가노의 눈 덮인 산은 높고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특히 겨울철에는 온천장이 참 좋다고 같이 가기를 권유해서다. 온천 하는 원숭이 구경도 여기서밖에 볼 수 없는 진풍경이라고 했다. 여관에서 시골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나온 차를 탔는데, 곧장 여관에 가지 않고 어느 산골짜기에 우리를 내려놓고 가버렸다. 아들 말이 지금부터 원숭이 구경을 간다고 했다. 산은 눈으로 하얗게 덮였는데 첩첩산중 눈길을 올라가니 쭉쭉 뻗은 삼나무와 편백나무가 울창해 경치는 아름답고 공기 또한 달콤해 심신이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산중에서 신선을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한참 힘들게 산을 올라가니 김이 무럭무럭 나는 노천 온천이 보인다. 그곳에서 원숭이들이 목욕을 하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원숭이들의 온천 목욕을 보게 된 것이다. 추운 겨울이지만 따뜻한 물속에 들어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모습이 마치 자신들이 원숭이가 아니라 신선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정말 원숭이로 변신한 신선일지도 모르겠다.

산을 내려와 여관으로 갔다. 일본 전통 여관은 처음이다. 방으로 가니 스무 살쯤 돼 보이는 처녀가 들어왔다. 1박 2일 우리가 머무는 동안 도움을 줄 직원이라고 소개하고 온천장에 대한 설명도 한다. 일본 전통의 약식 기모노를 입고 꿇어앉아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그 후 그녀는 식사도 날라주고 이불을 펴고 개는 등 온갖 잔심부름을 해주었다.

애교 있고 행동도 재치가 있어 점점 정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 한편은 편치 못했다. 저렇게 참하고 똑똑하게 생긴 처녀가 어쩌다 이런 궁벽한 시골 여관에서 손님 시중이나 들고 있단 말인가? 게다가 다른 직원들은 손님들의 물음에 대답이나 하지 감히 말을 먼저 걸지를 않는데 이 처녀는 초보인지 우리에게 질문도 하고 깔깔 웃기도 하며 마치 우리 딸처럼 굴었다.

사적인 질문을 했다. 자기는 대학을 휴학하고 잠깐 돈 벌러 왔다고 했다. 가슴이 저려왔다. 학비 때문에 먼 시골까지 와서 일을 하다니. 그러나 이야기를 다 듣고 슬펐던 마음은 행복으로 바뀌었다. 그는 유럽을 여행하고 사정이 되면 그곳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곳은 도시보다 돈도 많고 손님들도 점잖아 배울 점도 많다는 것. 이제는 나가노에도 봄이 왔고 그 처녀는 떠나고 없을 것이다. 지금쯤 프랑스나 독일 어디를 걸어다니고 있겠지. 부디 잘 되어 언젠가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권영재 대구의료원 신경정신과 과장'서구정신보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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