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창석의 뉴스 갈라보기] 한 종교인의 참회

지난 4월 22일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운명한 것을 기념하는 성(聖)금요일이었다. 이날 새벽에 세계 최대의 교회라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설립자인 조용기 목사가 신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것도 설교 도중에 강대상에서 만 명이 넘는 신자들 앞에서 무릎 꿇고 눈물을 쏟았다. 목사의 권위를 상징하는 강대상 위에서 행한 극히 이례적인 참회는 신자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조 목사로서도 가장 격렬한 방법을 선택한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간 순복음교회는 설립자 조 목사 가족의 권력욕에 의해 교회가 소유한 많은 재단 및 사업처가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아 교회의 교리적인 분쟁은 납득할 수 있어도 재산에 대한 분쟁은, 특히 비신자들에게는 파렴치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데 이는 본질상 반(反)종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과거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력은 실로 엄청났다. 얼마간의 부정적인 측면이 있었다 해도, 구한말 이래로 한국의 근대화에 결정적인 공헌을 해왔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특히 기독교 사회의식의 기초인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평등 의식은 당시 양반과 상민으로 나뉜 봉건적인 질서를 일거에 무너뜨려 버렸다. 그리하여 교인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은 새로운 사회의 지배계층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현재 기독교인이 자부하는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 등 당시의 엄청난 활동은, 사실상 평등 사회, 근검 절약 같은 새로운 이념에 대한 대중의 환호가 저변에 깔려 있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후죽순처럼 교회들이 생겨났고 이후 각 지역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초대형 교회들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비교적 후발 주자였던 순복음교회는, 선발 주자들이 자기만족에 취해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을 무렵, '성령 운동'이라는 더 극단적인 기치를 내걸고 삽시간에 국내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교회로 일어섰다.

문제는 오늘날이다. 시대적 요청에 기민하게 대응했던 과거의 모습을, 오늘날 교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대형 교회는 '그리스도의 열정'을 쏟는 게 아니라 비대한 자신의 몸집을 다스리는 데나 전전긍긍하는 형편이다. 과거의 성취는 아이러니하게 각 교회를 기습하고 있다. 성취가 큰 교회일수록 더한 고통에 허덕이는 것 같다. 순복음교회 역시 선발 주자 대형 교회들이 지도자의 세대 교체로 몸살을 앓았던 것처럼, 설립자의 퇴진 과정에서 그동안 성장의 증거였던 수많은 위업들은 거꾸로 반기독교의 얼굴을 하고 교회를 난타하고 있다. 순복음교회의 경우, 대학과 종합일간지, 각양의 봉사 법인을 둘러싸고 경영권 다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난 어릴 때 고향에서, 목사가 교회를 건축한 후 그곳을 떠나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다. 왜 어렵사리 교회를 지어놓고 다른 교회로 옮겨 버릴까? 이상해서 모친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착실한 신자인 모친은 이렇게 대답했다.

"성전은 하나님의 것이란다. 목사님은 성전을 건축한 뒤에 자신이 세운 것이라는 마음이 생길까 봐 두려워서 교회를 떠나는 거야."

그 감동은 아직도 내게 살아 있다. 예전에는 정신을 물질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서 그런 경우가 잦았을까. 하지만 요즘도 종교 내부에서 발생하는 비종교적인 사태는 역겨우며, 종교의 참된 모습에는 누구도 감동을 아끼지 않는다.

조용기 목사는 수년 전 한 기독교 시민단체에 다가오는 2011년 5월 14일에 모든 직에서 물러나기로 약조했단다. 그동안 경영권 분쟁의 핵심에 자신의 부인과 아들이 포함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이번 성 금요일의 참회가 이루어졌거니와, 마지막 시한에서 보일 결행은 이제 그분 자신의 몫인 것 같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유명한 '고백록'에서 "내 탐욕 탓으로, 주님과 더불어 있으면서도 허위를 소유하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주님을 잃게 되었습니다. 주께서는 허위와 더불어 주님 자신이 소유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참회하였다. 탐욕을 물리치는 조 목사의 행동은 늦게나마 다른 초대형 교회에 마땅한 전례가 될 것이며, 이 참담한 물질의 시대에 띄우는 교회의 아름다운 편지가 될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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