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시험과 성적

올 들어 네 번째 카이스트 학생이 자살했다고 한다. 성적에 따라 등록금을 납부하는 개혁의 부작용이란다. 총장이 머리를 숙여 사과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보이기도 했다. 일부 여론은 그분을 두둔하기도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국립대학에서 성적을 엄격히 관리하고 상호간 경쟁을 유발시켜 유능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초면이라도 남자들은 군대이야기만 하면 서로 말이 통하게 된다. 의사들은 의과대학 때 시험을 치던 이야기만 하면 그렇게 된다. 엄격한 통제 아래 두려움에 떨면서 어려움을 극복했던 기억들, 그것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대견함, 자신감 및 서로간 동질성을 심어주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시험 이야기라면 할 이야기가 많다. 교수님 앞에서 인체의 뼈를 들고 각 부위의 이름과 기능 등을 이야기하는 골학(骨學)시험, 인체나 현미경 속에 화살표로 표시해 놓은 부분에 대한 물음을 5분 내에 답지에 써야 하는 땡땡이 시험, 오늘 배울 앞부분을 시험 치는 예습시험 등등은 아직까지도 생각만하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괴력을 부린다. 등 뒤에서 부정기적으로 예습시험지를 들고 나무계단을 오르던 조교의 발걸음 소리는, 수업을 받던 우리들의 가슴을 염라대왕보다도 더 무섭게 작게 만들었으며, 매번 예습을 할 수 없었던 원서(原書)에 짓눌린 청춘들은, 책상 위에 놓인 시험지만 한없이 바라보다가 백지를 내고는, 1년 동안 낙제라는 이명(耳鳴)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었다.

그래도 이것들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학교 축제기간이었다. 시험지옥에 빠져 허우적대던 우리들은 이제 며칠은 우리세상이라고 기고만장했다. 체육대회 후 마신 막걸리에, 처음 맡아보는 가든파티에 동반한 여학생들의 체취에 흠뻑 취해 비몽사몽 그 기간을 보냈다. 산뜻한 마음으로 월요일에 학교에 출석하자마자 또다시 시험, 한 시간 동안 버티다가 백지를 제출하고는 근심에 찬 부모님의 얼굴을 떠 올리면서 또 막걸리 잔을 기울였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우리들 의과대학 입학 동기생들은 그렇게 시달리다가 50~60%만 같이 졸업했다. 의사란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기 위하여 그렇게 부정기적으로 시험을 치렀다는 점을 깨닫는데에도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카이스트 학생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시험과 성적이라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쟁이 없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 과거에도 똑 같은 경쟁이 있었고 그것들이 오늘을 만들어낸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경쟁을 두려워하지 말라. 한 번의 어려움을 극복하면 한 걸음 더 성장하는 것이다.

임만빈 <계명대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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