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동당 창설자가 누구냐는 논란이 있었을 때 윈스턴 처칠은 '그건 콜럼버스다'고 비꼬았다. 이유는 콜럼버스가 해양으로 출발할 때 소문으로만 전해 들은 어딘지도 모르는 그곳의 금(金)만 상상하며 떠났고 아메리카에 도착하고서도 거기가 어디라는 걸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모든 항해 경비와 노동력은 남의 손을 빌려 한 것을 정당의 창설에 빗댄 것이다.
참패로 끝난 4'27 재보궐 선거에서 보여준 한나라당의 몰골이 바로 처칠이 빗댄 콜럼버스 같다. 선거 시작 출발 때부터 목적지의 민심이 어떻게 돌아가고 얼마만큼 차게 식어 있는지 민심의 온도를 몰랐다. 강재섭의 경우, 분당이 대한민국 최고 양질(良質)의 보수 지역이란 추측과 과거 소문만 믿고 콜럼버스가 꿈꾼 노다지 표밭을 꿈꾸며 출발했을 것이다. 당 지도부와 수십 명의 의원들이 뛰어들어 지원 유세를 해준 것도 스페인 여왕과 뱃사람들 힘을 빌렸던 콜럼버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이 '콜럼버스당' 소리를 듣게 되는 더 큰 이유는 '도착하고서도 거기가 어딘지 제대로 몰랐다'는 데 있다.
강재섭, 그는 선거 초반부터 좌파 정권 부활을 견제 심판하자는 구호로 치고 나갔다. 보수와 진보좌파와의 대결이라는 빛바랜 투쟁 깃발을 꺼낸 것이다. 지금 보수가 소리 없이, 곳곳에서 사그라져 가고 있다는 걸 그는 몰랐다. 사그라지는 보수적 대중이 좌파나 친북, 종북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넘어갔다고 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세칭 30, 40대 '넥타이 부대' 들은 이른바 신세대 내지는 Y세대다. 중'고교에서 일부 좌파적 전교조 교사들의 영향권 아래서 청년기의 사관(史觀)과 이데올로기 가치관이 형성된 세대다. 보수 정치 세력의 좌'우 논리를 보수 성향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세대는 이미 아닌 것이다. 그들은 여의도의 60대(代) 3, 4선(選) 의원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신세계를 사유(思惟)하며 살고 있다.
강재섭 후보는 참패 후 '한나라당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SNS는 '조심'의 대상이 아니라 팔팔하게 살아 숨 쉬는 신세대의 '현실 공간'이다. SNS를 '수용'이 아닌 '조심'의 대상으로 본 것이야말로 곧 자신이 낡은 세대임을 자백하는 것이다. 이미 온 세상이 SNS라는 바다에 잠겨 있는데 물정 모르는 물고기 한 마리 혼자서 바닷물이 짜니까 조심해라 어쩌라 불평하는 것과 같다. 도착한 후에도 그곳이 어떤 곳이고 어디인지를 제대로 감을 못 잡고 봉창 두드리는 식 패배 변명을 하고 있으니 '콜럼버스당' 소리를 안 들을 수 없다.
이명박 정권 집권 후 정치 위기의 핵심은 중산 보수 계층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세청 자료를 보면 상위 계층 20%가 국민 전체 소득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20%를 80%의 중산층과 서민, 하위 계층이 나눠 가지고 있다는 계산이다. 소득 격차는 2009년보다 5배(6천200만 원)나 더 벌어졌다. 그런 양극화 속에서 저축은행 VIP 고객들의 뭉칫돈은 밤사이 서민들 몰래 끼리끼리 빼돌렸다. 표 날아가게 된 부산 국회의원들은 국민 세금으로 5천만 원 이상 고액 저축자를 위해 법을 고치겠단다. 가진 자들의 패거리 이기주의와 포퓰리즘이 하위 계층의 배신감에 불을 붙이고 있다.
대중의 민심은 좌파, 우파를 가려가며 물길을 만들거나 흐르지 않는다. 태어나면서 생겨나는 좌파는 없다. 저항적 좌파는 언제나 무능 정치가 '만들어'낸다. 살아갈수록 내 집 마련의 희망이 줄고, 똑같은 일 시켜놓고도 비정규 약자에겐 월급을 몇 배씩 적게 주면 그런 정권이 싫어지고 그런 재벌(가진 계층)이 싫어진다. 싫어지면 기피하고 끝내는 공격한다. 싫어진 그 정권, 그 재벌이 보수고 우파면 민심은 좌로 이동하고 민심을 모르는 정권과 재벌이 좌파이면 민심은 우로 돌게 된다. 보수 정권의 실책이 거듭되면 좌파 민중의 시민혁명이 오고 좌파 세력의 실책이 거듭되면 반대 상황이 될 뿐인 것이다.
좌'우란 게 결국 그런 것이다. 지금은 우파 실책에 의한 보수 중산층의 좌파 대이동 위기에 와 있다. 선거 시작 때부터 도착 때까지 어디가 어떤지를 모를 만큼 낡은 보수에 도취되고 마비된 집권당으로서는 보수민심의 좌파 대이동 위기를 알 리가 없다. 그런 한나라당에 '탁구당' '비아그라당'에 이어 이번엔 '콜럼버스당' 별명 하나 더 붙여 드린다. 이 꼴로는 좌파 정권의 필연적인 부활이 걱정돼서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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