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대신 사람,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다'

'사람 도서관' 들어보셨나요?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사라지고 '취업 스펙' 쌓기에 점령당한 대학 캠퍼스. 이런 삭막한 공간에 '사람'을 통해 세상에 대한 창(窓)을 여는 이색 프로그램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달 경북대 사회대 학생회실에 문을 연 '사람 도서관'(living library)이 그것. 이름도 생소한 '사람 도서관'은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니라, 이색적인 경험을 지닌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자는 취지로 문을 열었다.

"지난해 프랑스로 여행을 갔을 때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는 책을 감명깊게 읽었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사람 도서관'의 아이디어를 낸 박성익(27'경북대 임학과 4년'사진) 씨는 스스로를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재미있어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취업 원서 쓰느라 바쁜 동기들과 달리 대구녹색소비자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람 도서관은 '책 대신 사람을 빌린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이야기(인생)를 읽는다'는 아이디어가 출발점이다. 따라서 사람 도서관에서의 '책'은 '사람'과 동의어다.

지난달 초 열린 제1회 사람 도서관 행사에선 모두 5권(명)의 사람 책이 선보였다. 인종'이념을 초월한 인도 오르빌 공동체에서 4, 5년을 보낸 사람, 생태적인 삶에 대한 애정을 가진 미국인 영어강사, 여성 인권의 회복을 주창하는 사람 등이 참가했고, 20여 명의 대학생과 일반인들이 독자로 함께했다. 참석자들은 읽고 싶은 책(사람)을 골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30여 분간씩 2시간가량 진솔한 대화를 이어갔다.

소박한 모임이지만 참석자들의 만족은 컸다. 독자들은 타인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고, 사람책들도 모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는 기회가 됐다는 것.

경북대 사회대 학생회 측에서 행사의 취지에 흔쾌히 공감, 카페로 새단장한 학생회실은 카페의 자유로움과 책 향기가 물씬 나는 캠퍼스 명물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한 사회학자가 '우리는 언제 가장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가' 하는 연구를 했대요. 명상할 때, 산책할 때, 여행 다닐 때, 책을 읽을 때 등 많이 사례를 분석했는데, 결과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였답니다.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대화는 언제나 해결책을 만들어준다'고 해야 할까요?"

사람 도서관은 예약제로 운영된다. 읽고 싶은 책(사람)을 주문하면 정해진 날에 구독자와 사람책들이 모여 모임을 갖는 형식이다. 2회 행사는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 열 계획이다. 참가 희망은 인터넷 카페(cafe.daum.net/small steps)에서 받는다. 박 씨는 "2회 때는 치유를 주제로 5, 6명의 사람책이 참석할 것"이라며 "사람도서관이 정착되면 교향악단 출신의 음악인이나 다양한 경험을 가진 분들을 초청해 큰 프로그램으로 키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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