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센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가 지난달 19일 국내 출판 인문서로는 최초로 밀리언셀러(100만 부)를 달성했다고 한다.
센델의 '정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다. 극단적 이윤 추구(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 개인이나 기업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돈벌이가 되는 사회, 정의와 책임이 밥 먹여주는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속가능경영' '사회책임투자'의 연장선상에 있다.
2004년 12월, 매일신문은 '지역경제 삼키는 유통공룡'이란 제목의 시리즈를 연재했다. 기자는 1996년 첫 등장 이후 대구 역외 유통 대기업들이 초토화시킨 지역 경제 현장을 취재했다. 바로 옆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30년 만에 장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는 시장 상인들을 만났다. 24시간 영업체제로 전환한 대형마트의 경쟁 틈바구니에서 '아사' 상태에 빠진 슈퍼마켓 주인들의 하소연을 들었다.
그러나 유통 대기업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기업의 존재 목적은 이윤 추구이고, 지역 영세 소매업의 몰락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에 의한 것이란 논리다. 당시 기사에 달린 어느 댓글이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다.
'뭔가 억울하다는 듯한 투의 글인데, 대형마트들을 미워하는 마음만 키워서 뭘 얻겠다는 것인가? 지역민의 애향심을 자극하시려고? 마트의 대형화는 전국적인, 아니 세계적인 추세다. 지역의 영세소매업자는 대자본과 인력을 무기로 다양한 상품을 싼 값에 공급하는 대형마트를 결코 당할 수 없다….'
그후 7년.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100만 부를 돌파한 바로 그날, 대구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롯데, 홈플러스, 이마트, 코스트코홀세일 등 역외 유통 대기업의 지역 기여도 조사를 공개했다. 2004년 당시 1조3천억원대의 역외 유통 대기업 매출은 2010년 2조5천913억원으로 2배 가까이 급증했으나 지역 기여도는 낙제점 이하 수준으로 드러났다. 매출의 99%가 서울 본사나 외국 법인으로 빠져나갔고, 지역 제품 매입 비율은 평균 10%대에 불과했다.
반면 외국계 유통기업의 현지 전략은 대구 지역과 판이하다. 지난해 대구 지역에서 5천761억원의 매출을 올린 영국 테스코(홈플러스)가 대표적 사례다. 테스코는 영국 지역 사회의 장기 실업자를 매장 직원으로 채용하는 '지역사회 재건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낙후 지역에 매장을 세워 지역사회를 활성화하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다.
테스코의 지역사회 재건사업은 영국 시민단체들의 '반(反)테스코' 운동에서 비롯됐다. 시민단체들은 이른바 '테스코폴리'(테스코(Tesco)+독점(monopoly))란 조직을 결성, "거대 다국적 유통업체가 지역에 진출하면 지역 사회 자금줄이 막힌다"고 역설했다.
태생적으로 '싸게 더 싸게'를 외칠 수밖에 없는 유통 대기업에도 '정의'는 있다. 합리적 가격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소비자 역시 보다 정의로워질 수 있다.
대구 지역에 진출한 유통 대기업들 또한 기업 스스로 지역사회와 함께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아닐까. 이와 함께 기업을 바꾸는 지역 소비자들이 있어야 한다. 대구시의 지역 기여도 공개가 유통 대기업들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점진적이지만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바로 소비자다.
대구 토종 유통업체들은 지금 전멸 직전 상태다. 현대와 신세계라는 유통 대기업들까지 줄줄이 입성을 앞두고 있다. 토종 업체들은 지난 수십 년간 지역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납품업체와 거래해 지역에 돈이 돌게 했다. 대구에 들어오는 외지 유통 대기업과 지역 소비자가 '정의'와 '책임'을 통해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길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이상준기자(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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