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길거리를 장식하던 살벌한 문구의 현수막, 플래카드가 사라졌다. 요즘 대구의 모습이다. 거의 사수(死守) 수준이었던 밀양 신공항 유치가 어이없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거리의 함성도 많이 누그러졌다. 분노를 삭일 수밖에 없는 '현실'과 아무리 애를 써도 별수 없다는 지역민의 '무력감'이 교차하면서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또 하나의 플래카드가 나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숫자가 점점 불어나고 있다. 다름 아닌 '비즈니스 과학벨트 유치'다. 정확히 얘기하면 경북(G)'울산(U)'대구(D)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 서명운동이다. 650만 서명운동에 돌입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미 밀양 신공항 유치 때 1천만 명 서명운동을 벌여본 경험이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지난 3월 22일, 770만 명의 서명록을 1t 트럭 5대에 싣고 정부와 한나라당에 전달한 위력(?)을 과시한 지역이 아닌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1천만 명 서명운동이 정책 결정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확인한 지역민들이다. 그런데 또 서명운동을 벌인다.
물론 밀양 신공항의 공황(恐慌)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인지도 모른다. 비즈니스벨트라도 건지겠다는 작은 욕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방법론이 영 시원치 않다. 마치 '떡고물'이라도 달라는 보챔이 아니겠는가. 당국의 입장에서는 안쓰러운 마음에 이쪽으로 추가 기울지 모르겠으나 이럴 경우 지역을 위해서도 득이 될 게 없다. '우는 아이에게 떡'을 주는 형국이 된다면 다음번에는 철저히 배제될 것이 뻔하다. 그야말로 소탐대실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철저하게 과학성과 경제성에 입각하여 주장을 펴야 한다. 숫자만 늘린 서명운동이나 삭발식 같은 수치적이고 외형적인 운동보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옳다.
서명운동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원천적으로 리더십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임시방편으로 울분을 터뜨리기에는 서명운동이 좋다. 그러나 지역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표심(票心)운동을 벌이는 것이 훨씬 더 매서운 질책이 아니겠는가. 한 달 전, 트럭째로 정부에 전달된 서명록이 소각 처리는 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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