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자궁 내막암 앓는 강신희 씨

"내 몸속 종양보다 혼자 있는 손자가 더 걱정"

"내 몸보다 집에 혼자 있는 손자가 더 걱정이지." 지난달 몸에서 자궁을 꺼내는 수술을 받은 강신희(67·여) 씨는 인터뷰 내내 손자 희승이(가명·15) 걱정만 했다. 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나야 내일 죽으면 그만이지만 우리 손자 걱정이 돼서 어찌 눈을 감겠나."

강신희(67'여) 씨는 인터뷰 내내 손자 희승이(가명'15) 이야기만 했다. 자신의 아픈 몸보다 집에 혼자 있을 중학생 손자의 밥 걱정이 앞섰다. 자궁내막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강 씨는 지난달 20일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다. 그가 병원에 입원하던 날, 희승이는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다. 수학여행을 가서도 하루에 몇 번씩 "할머니 괜찮아?" 하며 전화를 걸어오던 손자 이야기를 하면서 강 씨는 끝내 눈물을 쏟았다.

◆할머니는 '할매 엄마'

희승이는 강 씨를 '할매 엄마'라고 부른다. 희승이에게 강 씨는 따뜻하게 안아주는 할머니인 동시에 엄마 같은 존재다. "희승이가 4살 때부터 내 손에 컸으니께 벌써 10년이 넘었구만." 희승이가 4살 때 엄마는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해 아버지도 집을 나갔다. 네 살배기 아이는 부모의 죽음과 가출로 버림받았다.

강 씨는 아들이 버린 손자를 품었다. '부모 없는 아이'라며 세상 사람들이 동정할까봐 가슴으로 더 따뜻하게 희승이를 감쌌다. 희승이 초등학교 입학식부터 졸업식까지 강 씨는 6년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면 도시락과 돗자리를 들고 손자를 찾아갔다. "희승이 기 죽을까봐 그게 제일 겁났지."

희승이는 어릴 때 엄마를 자주 찾았다. "엄마는 어딨어" "엄마 보고 싶어"라며 강 씨의 가슴을 울렸다. 그때마다 며느리의 사진을 몽땅 불태워 버린 것이 후회됐다. "지 애미 얼굴도 모르면서 '엄마 엄마' 찾을 때마다 나도 많이 울었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희승이는 더 이상 부모를 찾지 않았다. 엄마가 보고 싶지 않으냐는 강 씨의 물음에 희승이는 "엄마 아빠 없어요"라고 대꾸했다. 아버지가 재혼해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무렵이었다. 그래서 강 씨는 더 건강해야만 했다. 할머니만 의지하며 사는 희승이 때문이었다. 그런 강 씨는 지난달 자궁내막암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이제 아무도 안 보고 싶어"

강 씨는 30년 전 경북 영주에서 경산으로 시집갔다. 강 씨는 초혼이었지만 남편은 재혼이었다. 남편에게는 아들 하나와 딸 다섯, 육남매가 있었다. 핏줄로 이어지지 않은 어미였던 탓에 자식들과 살갑게 지내지 못했다. 친자식처럼 키우며 시집 장가를 보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남편이 4년 전 세상을 떠난 뒤 자식들은 서서히 강 씨에게 등을 돌렸다. 점차 연락이 뜸해졌고 명절에도 찾아오는 법이 없었다. 서러웠다. 그리고 원망스러웠다. 부모 자식 간의 정이 이렇게 쉽게 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희승이는 강 씨의 친손자가 아니다. 지금은 연락도 하지 않는 아들이 낳은 자식이다.

강 씨와 희승이의 명절은 그래서 더 외롭다. 찾아올 사람도, 찾아갈 곳도 없는 두 식구는 영구임대아파트에서 TV를 보며 쓸쓸한 명절을 맞이하고 또 보낸다. "명절이 되면 동네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잖아. 승용차에서 사람이 내리고 또 타고. 희승이는 그게 항상 부러운가 봐." 설날이 되면 희승이는 강 씨에게 절을 한다. 강 씨는 손자에게 세뱃돈 3만원을 챙겨준다. "기죽지 말라고, 먹고 싶은 것 사먹으라고 주는 거지." 강 씨가 건넨 3만원은 이 모든 외로움 훌훌 털어버리라는 무언의 격려다.

◆"나는 죽으면 안 돼"

1994년 강 씨는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때는 남편도 있고 자식도 있었다. 몸은 아파도 마음은 외롭지 않았다. 강 씨는 "그때 아파트 경비일을 해서 남편이 모아둔 돈을 거의 다 썼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암세포는 강 씨가 지쳐 있을 때 다시 찾아왔다. 남편도 자식도 없이 정부 지원금 50만원으로 혼자 손자를 키우고 있는 지금, 암의 무게는 예전보다 수십 배 더 무거웠다. 지금 강 씨가 가진 것은 62㎡ 남짓한 영구임대아파트에 보증금으로 들어간 300만원이 전부다. 50만원에서 관리비와 월세 등 20만원을 내고 나면 30만원이 손에 남는다. 그 돈으로 수술비와 병원비를 계산할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강 씨는 희승이가 수학여행 가던 날 용돈을 손에 쥐여주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는 "사회복지관 직원들이 희승이에게 몇만원을 줬다는 말을 들은 뒤에야 마음을 놓았다"고 했다. 강 씨는 할머니 없이 밥은 잘 챙겨 먹는지, 교복은 깨끗하게 입고 다니는지,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모든 것이 다 걱정된다. 희승이가 매일 아침 전화를 걸어 "할머니! 나 밥 먹고 학교 가요"라고 말하면 강 씨는 "먹기는 먹나, 할매가 빨리 갈게"라며 눈물을 삼킨다.

할머니는 글을 읽지 못한다. 그래도 희승이는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할머니에게, 자신의 전부인 할머니에게, 희승이는 편지를 써 큰 목소리로 읽어준다. '할매 엄마에게'. 희승이는 오늘도 강 씨가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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