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급격한 핵가족화, 결혼 이주여성들의 증가, 늘어나는 이혼과 재혼 등의 영향으로 새로운 형태의 가족들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지붕 아래 3대 또는 4대가 북적대며 생활하는 대가족은 이제 뉴스에서나 접할 수 있을 만큼 귀한 존재가 됐다. 가족의 형태가 달라지면서 가족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올 1월 발표한 '2010년 제2차 가족실태조사'(전국 2천500가구 만 15세 이상 가구원 4천754명 대상) 결과에 따르면 친할아버지'친할머니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4명 중 1명꼴에 불과했다. 가정의 달 5월, 다양한 가족들을 만나 그들이 말하는 이 시대 가족의 의미를 들어봤다.
◆다문화가족
전태원(53'안동시 풍천면) 씨는 2006년 중국인 조은희(중국명 자오춘링'37) 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많은 다문화 가족 가운데 전 씨 가족이 주목 받는 이유는 조금 남다른 가족 구성 때문이다. 전 씨 부부는 모두 재혼으로 슬하에 유빈(3)과 혜빈(17)을 두고 있다. 유빈이는 결혼한 뒤 얻은 아들. 하지만 혜빈이는 조 씨가 중국에서 낳은 딸이다. 2008년 혜빈(중국명 려우리쑤앙)이를 한국으로 데려오면서 4명이 한 가정을 이루게 됐다. 전 씨는 날마다 딸을 그리는 아내를 보고 마음이 아파 먼저 혜빈이를 데려오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전 씨는 가족을 인내와 이해를 먹고 자라는 유기체라고 했다. "처음부터 가족이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남남끼리 만나서 만들어가는 것이 가족입니다.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문화적 차이도 있고 말도 통하지 않아 사소한 오해도 풀지 못해 많이 힘들었습니다. 얼굴 맞대고 살면서 참고 배려하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재혼가족
김진수(가명'57)'서지영(가명'54'여) 씨는 10년 전 재혼했다. 재혼 당시 김 씨는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 서 씨는 고등학생 두 딸과 중학교 다니는 아들을 두고 있었다. 결혼하면서 김 씨는 아내의 아이들과 가정을 꾸렸다. 자신의 아이들은 전처가 맡아 양육하기로 합의했다. 재혼 생활은 비교적 원만했지만 역시 아이들 문제가 걸렸다. 감수성 예민한 나이에 부모의 이혼과 재혼을 경험한 아이들은 김 씨가 다가가도 곁을 잘 내주지 않았다. 특히 아들은 노골적으로 반항했다. 그래서 싸움도 많이 했다고 한다. "세월이 약이 됐습니다. 아이들이 철이 들면서 부모의 선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부딪히는 과정 속에서 모난돌이 둥글둥글해지 듯 성격도 원만해졌습니다."
김 씨는 재혼한 뒤 가족관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도 여느 사람들처럼 '가족=핏줄'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가족은 세월을 같이 하는 존재다. "장점과 단점,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서로 닮아가는 것이 가족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열린 가슴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입양가족
중학교 3학년인 소영(가명'15)이와 초등학교 1학년인 성훈(가명'7)이는 은재식(45'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김명희(49'대안가정운동본부 사무국장) 부부가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이다. 가정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탁 양육하는 대안가정 '해뜨는 집'을 함께 운영하다 1997년 결혼한 은 씨 부부는 2001년 '해 뜨는 집'에서 맡아 키우던 딸 소영이를 입양했다. 2005년에는 입양 캠프에 참가했다 생후 10개월 된 아들 성훈이까지 입양했다. 은 씨 부부는 결혼하면서 아이는 낳지 않기로 했다. "입양은 또 다른 출산입니다. 이미 자식을 낳았으니 더 낳지 않기로 했습니다." 은 씨 부부에게 가족은 추억과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낳았다는 사실만으로 가족이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 친부모까지 죽이는 엽기적인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유대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가족을 지키는 힘은 핏줄이 아니라 유대에서 나옵니다."
◆4대가족
신상철(70'대구시 남구 대명4동)'심판술(66'여) 부부 집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신 씨 부부는 웃음소리의 원천은 4대가 함께 사는 것에 있다고 했다. 신 씨 부부 집에는 어머니 이공성(89) 씨를 비롯해 아들 내외 신석열(43)'박수정(40'여), 손녀 신정은(8)'손자 신재원(7), 미혼인 큰 딸 신미정(41) 씨가 대식구를 이루며 살고 있다. 출가한 뒤 대구에 살고 있는 막내 딸 부부 이형우(40)'신지연(39) 씨가 외손자 이진욱(13)과 외손녀 이연주(8)까지 데리고 방문하는 주말이면 집안은 북새통을 이룬다. 신 씨는 4대가 같이 살 수 있는 것은 복이라고 했다. 어른이 오래 살아 있어야 하고 자식들도 기꺼이 함께 살기를 원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신 씨는 가족을 집단 공동체라고 정의했다. "어른들만 있으면 삭막한데 아이들이 있어 사람사는 집 같습니다. 집은 모름지기 떠들썩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도 들어옵니다. 어른들이 웃어른을 공경하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됩니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족인데, 요즘에는 아이도 적게 낳고 부모 자식도 함께 살지 않아 외로운 가족이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가족의 모습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다양한 가족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은 가족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으며,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고 가족이 있다는 것은 여전히 큰 행복이라는 사실이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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