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교육계가 '기숙사' 건립 문제를 둘러싸고 뜨겁게 맞붙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이 우동기 교육감 취임 후 학력 향상을 위해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고교 기숙사 건립 사업에 대해 전교조, 시민단체 등이 '1% 상위권 학생을 위한 특혜'라며 반대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학부모들의 마음도 양 갈래다. 바람직한 교육 방법은 아니지만 내심 '내 아이는 기숙사에 보내고 싶다'는 속마음이 엇갈리는 것이다.
◆다부지게 잡아준다?
영신고는 2006년 동구 봉무동으로 이전하면서 기숙사를 신축했다. '금옥숙사'(金玉宿舍)에는 현재 132명의 학생들이 일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후까지 5박 6일을 꼬박 이곳에서 먹고 자며 모든 생활을 한다. 1학년 때부터 3년을 이곳에서 생활했다는 김건우(19) 군은 "혼자 공부를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나태해지는 때가 생기게 마련인데 꽉 짜여진 규율 속에서 생활하다 보면 헛되이 흘려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어 가장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기숙사 생활이 고등학교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하는 건우 군이지만 기숙사가 그리 만만한 공간은 아니다. 그는 씩 웃으며 '감옥숙사'라고 했다. 그만큼 기상시간과 취침시간, 자습시간 등 지켜야 할 룰이 엄격하다 보니 스트레스도 적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한 명의 예외도 없어야 유지되는 것이 단체생활의 규칙이다. 정순옥 사감은 "또래 친구들이 모여 생활하는 공간이다 보니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끼리끼리 어울려 노는 놀이터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작은 규칙 위반 하나도 쉽게 넘길 수 없고, 특히 생활리듬을 해칠 수 있는 취침시간 위반은 가장 엄하게 벌한다"고 했다.
대신 아이들의 스트레스 풀이 대상이 되는 것은 사감 선생님들이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들어주고, 가끔은 아이들과 소타기'말타기 놀이를 하며 허물없이 어울리기도 한다. '엄마사감'이라는 다정다감한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한 정 사감은 "기숙사의 책임자로 가장 큰 고민이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주느냐 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년 11개 기숙사 신설, 275억원 투입
현재 영신고는 성적 상위 40% 이내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희망자에 한해 기숙사에 입사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희망자 수가 많다 보니 늘 기숙사 입사는 대기인원이 늘어선 상태. 정 사감은 "1학년 신입생의 경우만 따져도 평균 2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고 했다. 기숙사 입사 여부를 결정하는 데는 성적이 큰 기준이 되긴 하지만 면접을 통해 학생의 성격 등을 두루두루 살핀다고 했다. 개인주의 성향이 너무 강하거나, 극도로 예민한 성격 등은 단체생활을 견디지 못할 우려가 높기 때문에 가급적 배제한다는 것. 박태운 교감은 "기숙사 생활을 통해 직접적으로 학생들의 성적을 향상시키는 효과보다는 규칙적 생활을 통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효과가 더 우선한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기숙사 입사 기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교가 비슷하다. 한 교사는 "공부할 의욕이 없는 학생들을 데려다 억지로 기숙사 생활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그렇다 보니 어느 정도 학업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한 방법으로 성적 기준을 두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현재 대구에서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모두 19개 고교. 대구과학고'대구외고'포산고'다사고(6월 예정) 등 6개 공립고교와 영신'덕원'경원'성광 등 11개 사립고 등이 기숙사를 두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은 275억8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내년 3월까지 11개 학교에 기숙사를 추가로 더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대부분이 자율형 공립고로 지정된 대구고, 달성고, 구암고, 학남고, 경북여고 등이며, 사립학교로는 효성여고와 심인고, 신명고가 선정됐다. 우동기 교육감은 지난해 교육감 선거 당시 2014년까지 800억원의 예산을 들여 30개 학교에 기숙사를 신축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대구시교육청 우병영 장학사는 "성적으로만 기숙사 입사 학생을 뽑는 것이 아니라 원거리 통학생이나 사회적 배려 대상자도 두루 고려해 선발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성적지상주의, 비교육적 방식
하지만 전교조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소수를 위한 기숙사 건립을 중단하라"며 지난달 27일 시교육청 앞에서 '친환경 의무급식 실현과 기숙사 건립 중단을 위한 대구운동본부' 결성식을 가졌다.
사실 학교당 100명 안팎에 불과한 기숙사 수용 인원은 전교생의 10%에도 못 미치는 소수를 위한 시설이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대구시교육청은 시민이 내는 교육세를 소수가 아닌 다수, 즉 보편적 교육복지를 위해 집행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전교조 대구지부 조정아 정책국장은 "입학할 때 대비 졸업할 때 성적을 확인해 봤지만 기숙사가 학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또래끼리만 모여 있다 보니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거나, 휴대전화'PMP 등을 가지고 노는 등 통제가 힘들다는 것. 조 국장은 "기숙사가 있는 학교에서 3년을 근무한 경험이 있는데 아예 오전 중에는 수업 진행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며 "새벽 2, 3시에 잠이 들고 겨우 몇 시간 잠을 잔 뒤 6시에 기상한 아이들이 어떻게 수업에 집중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경명여고 한준희 교사도 기숙사 건립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교사는 "입시전형이 많이 바뀌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성적만 중시하는 입시지도를 하다보 니 대구의 대입 결과가 계속 나빠질 수밖에 없다"며 "대입 전형의 60%를 차지하는 수시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재능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데 이런 것은 기숙사에서 공부만 시킨다고 해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기회비용의 문제도 있다. 한 교사는 "교육이란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쪽이 되어야지, 이미 가진 자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여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학부모들은?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기숙사가 비교육적 방식이라는 데 동의를 하면서도 내심 자신의 자녀만은 기숙사에 들어가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청소년기의 소중한 경험이고, 평생을 이어가게 될 가족애와 소속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부모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 하지만 '성적'이라는 지상명제 앞에서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
중학교 3학년 자녀를 두고 있는 박상영(44) 씨는 "우리 딸이 더 좋은 대학에만 갈 수 있다면 당연히 기숙사에 보내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또 "소수를 위한 투자라는 데 반감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내 아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는 대상이 되지 않겠느냐"며 "아마 대다수 부모들이 그런 '희망'을 갖고 기숙사 건립에 찬성할 것"이라고 했다.
감수성 예민하고 반항기 심한 사춘기 시절의 자녀를 보살피기에 오히려 기숙사가 편리하다는 부모들도 상당수다. 아침 일찍 등교하고 밤 늦게 하교하는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불편도 없는데다가, 사춘기 부모와의 잦은 마찰도 줄어들어 편하다는 것. 막내아들을 기숙사에 두고 있다는 김미현(가명'52) 씨는 "중 3때까지만 해도 늘 아들과 언성을 높여 싸우는 일이 잦았는데 올해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주말에만 만나게 되니 안타까운 마음에 더 많이 사랑해 주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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