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캐나다에 올 때만 해도 엄마 옷자락만 붙잡고 다니던 둘째 아이가 여섯 살이 되어 9월이면 Kindergarten(유치원)에 입학합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 와서 처음에는 캐나다인이 영어를 하면 양쪽 귀를 손으로 틀어막고, 교회 놀이방에서도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제 아내는 무척이나 마음 아파했지요.
수줍음이 많은데다 우리말조차 또래 아이들에 비해 늦어 의사 표현을 거의 못한 때라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듯했습니다. 그렇다고 둘째 때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거니 하며 걱정을 달랬습니다. 작년에는 외국인이 운영하는 놀이방에 보내 이곳 생활에 적응하게 하려고 애를 썼는데 숨이 꼴딱 넘어갈 정도로 우는 바람에 결국 놀이방 보내는 일도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입니다. 우리말이 많이 늘었고 엄마와 떨어져 놀이방에서도 잘 놉니다. 얼마 전에는 감기 때문에 열이 40도까지 올라 "오늘은 집에서 놀자"고 했더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놀이방에 가야한다는 겁니다. 한 번은 아내가 마트에서 장을 보고 놀이방에 데려다 준다고 하니까 자기를 먼저 놀이방에 데려다 주고 마트는 나중에 가라고 할 정도가 되었지요.
무엇보다 예비 유치원에 잘 다니고 있어서 얼마나 기특한지 모릅니다. 캐나다는 주마다 교육과정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몽튼에서는 유치원부터 정규 교육 과정에 속합니다. 모든 학교에 유치원이 있고 무조건 다녀야 하는 의무 교육입니다. 한국과 달리 9월이 입학 시즌인데 학교에서는 1년 전부터 입학 신청서를 받습니다. 작년에 둘째 아이 입학 신청서를 내면서 1년이나 남았는데 벌써 접수를 받는 것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입학생들을 배려하는 정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청서 접수 후 얼마 뒤, 학부모와 선생님과의 모임이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모임에 갔더니 유치원 입학하기 전에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익혀야 할 예절과 학습 사항을 설명해주고 집에서 아빠, 엄마가 지도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교재와 문구류를 나누어 주더군요. 그 다음 달에는 아이와 함께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여러 가지 놀이를 통해 아이의 인지 능력을 한 명씩 체크하고 그 결과를 집으로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외국에서 온 아이들을 위해 6주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예비 유치원을 운영하는데 부모가 참관하는 공개 수업입니다. 수업 내용은 색깔 알고 말하기, 숫자 0~10까지 세고 쓰기, 알파벳 쓰기, 선생님이 동화책 읽어 주기, 색칠하고 가위로 오리기 등입니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 온 아이들이 캐나다 아이들 속에서 뒤처짐 없이 유치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인 배려입니다.
한 번은 선생님의 교육관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숫자 5를 각자의 보드판에 쓰라고 했는데 베트남 아이가 잘 쓰지 못하자 선생님이 옆에서 따로 가르쳐 주더군요. 그런데 한국 아이가 자랑하듯 20까지 세어 보였습니다. 평소 칭찬을 아낌없이 하는 선생님이 그 때만큼은 10이 넘는 숫자는 지금 알 필요가 없다고 하며 베트남 아이를 계속 가르치는 겁니다. 잘하는 아이 위주가 아닌, 뒤처지는 아이를 잘하게끔 이끌어 주는 캐나다 교육을 보는 순간이었지요. 이렇게 외국 아이들을 위한 6주간의 프로그램이 끝나면 캐나다 아이들과 외국 아이들 모두가 함께 하는 예비 유치원이 또 운영됩니다. 그러니까 캐나다 아이들도 유치원에 정식으로 입학하기 전에 예비 유치원을 통해 학교가 어떤 곳인지, 어떤 것을 배우는지 알게 하면서 낯선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자유롭게 놀다가 어느 날 질서와 규칙이 존재하는 유치원에 들어가서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아이들이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지요. 이곳의 교육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느리게, 천천히 그 나이에 알아야 하는 것들만 배우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매일 매일 충분히 놀 수 있고 표정이 무척 밝습니다. 아이들로부터 놀이를 빼앗을 권리가 우리 어른들에게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음껏 놀면서 학습은 천천히, 그러나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은 충분히 주는 캐나다 교육 속에서 둘째 아들은 워밍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영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틈에서도 귀를 막지 않습니다. 영어 스트레스를 넘어서고 있고 낯선 모양을 한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고맙고 기특하고 사랑스럽습니다.
김희준 khj0916@naver.com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