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립한 안토니오 그람시는 1891년 사르데냐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4살 때 척추를 크게 다쳐 평생을 불구로 지냈지만 신념이 강한 사상가였다. 1926년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파시즘 정권의 탄압으로 감옥에 갇힌 그는 1937년 죽음에 이르기까지 11년간 철창 속에서 지내야 했다. 자유를 박탈당한 그는 3천 쪽에 이르는 '옥중 수고'(Prison Notebook)를 집필했으며 이는 그의 대표적인 '헤게모니 이론'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은 국가나 사회의 지배 계급이 경제적, 물리적 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피지배 계급을 승복시키고 기꺼이 따르게 하는 자발적인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민중들이 따를 수 있는 도덕적 동의가 헤게모니이며 이것이 강제력의 지배와 균형을 이룰 때 헤게모니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헤게모니는 다양한 사회 계층에 대한 지배 방식과 현 상황 유지를 위해 국가기구들을 사용하는 방식, 다양한 사회 계층들의 동의(同意)를 구하는 방식 등을 설명하는 고차원적 개념이지만 흔히 조직이나 집단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는 주도권을 말하기도 한다.
4'27 재'보선 패배의 충격파에서 벗어나려는 한나라당에서 4선의 비주류인 황우여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된 직후 주류인 친이계와 새 지도 체제 구성을 둘러싼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고 있다. 황 원내대표를 지원하는 소장파 의원들은 친이계의 안상수 대표 등 전임 지도부가 구성한 비상대책위원회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중립 성향의 황 원내대표는 이와 함께 "국가 예산권은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이라며 현 정부의 핵심 국정 기조인 감세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한나라당 내의 이 같은 변화는 헤게모니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청와대가 헤게모니를 쥐고 당이 따라가는 이전의 당청 관계에서 벗어나 당이 제 목소리를 내고 제 역할을 다하겠다는 움직임이다. 4'27 재'보선 패배의 원인 중 하나가 당의 헤게모니 상실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람시의 지적처럼 당청 간, 당내의 헤게모니 다툼이 어떠한 동의 과정을 거쳐 변화되고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김지석 논설위원 jise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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