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갤러리에서] 이태현 작 'ROH-2903'

갈필로 휘두른 듯한 가로수 먹빛, 그 속에서 봄은 물결로 일렁이고…

캔버스 위 혼합재료. 244.5×122㎝. 2011년 작
캔버스 위 혼합재료. 244.5×122㎝. 2011년 작

달성 가창에서 우록을 지나는 길은 지금 한창 5월의 신록으로 눈이 부시다. 팔조령 아래에 있는 AA갤러리에서는 마침 추상 형식을 통해 자연에 대한 관념을 표현하는 이태현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수묵화 같은 여운을 남기면서 시각적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유현한 예술세계는 절정에 이른 바깥의 현란한 봄빛과 대조되는 관조적인 분위기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이 작품은 색채를 억제한 흑백의 단색조 화면으로서 비대상적인 추상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풍광과 드넓은 공간감을 상상하게 하는 점이 이채롭다.

올오버 화면의 평면적인 단순함 위에 거친 솔을 가지고 이리저리 움직인 흔적들이 마치 갈필로 그린 강가의 포플러 모습 같고 흐르는 강의 수면에 비친 반영처럼 보이기도 한다.

붓질과 제스처는 바람에 나부끼는 잎사귀의 운동을 연상시키고 숯가루를 풀어 만든 물감이 낸 신비한 먹빛은 동양적인 정신세계의 깊이로까지 느끼게 된다.

봄날 역시 짧고 덧없이 지나가겠지만 어떻게 시간을 초월한 이미지 속에 그 구체적인 인상을 오래 붙잡아 놓을 수 있을까. 그래서 언제든 우리의 시각과 관념에 살아있게 하기 위한 그런 꿈 같은 것을 이 작품은 자극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김영동

▶~28일 AA갤러리(053-768-4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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