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경주를 찾는 관광객은 연간 약 2천만 명에 해당한다고 한다. 언뜻 보면 대단히 많은 숫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대부분이 경주를 당일치기로 다녀가는 '행락객'일 뿐이다.
또 다른 통계를 보자. 경주를 찾는 관광객 1인당 평균 13만원 정도의 비용을 경주에서 지출한다고 한다. 이 숫자도 허수에 불과하다. 경주를 찾는 '행락객'들은 문화재 주변 음식점이나 보문단지에서 돈을 쓰고 경주를 훌쩍 떠나버리는, 경주에서 자신의 보금자리를 매일 만들어가고 있는 대부분의 '경주시민'들과는 무관한 숫자이다. 이렇게 경주는 관광산업과 연관된 지역과 전통적인 농업 및 상업을 하는 지역으로 쪼개어져 있다. 서로에 대해 무관심한 두 지역이 하나의 공간에 그냥 존재할 뿐이다.
이런 슬픈 현실은 무시된 채로 경주는 '문화역사관광도시'라는 거창한 미명 아래 지금까지 방치되어 왔다. 사태의 본질은 이렇다. 통일신라 이후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 볼 때, 경주는 문화적 중심 공간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마다해 오지 않았다. 물론 조선이 성리학 중심의 사회가 되면서 경주의 위치는 흔들렸지만, 경주가 한국 문화의 정체성(identity)을 만들어 가는 데 핵심적인 '아이콘'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경주는 현재 이에 걸맞은 위치를 전혀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속된 표현으로, 경주는 자신이 찾아먹어야 할 밥그릇조차 챙기지 못하고 있다. 이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를 들어보자. 문화재청 산하의 4년제 대학인 '한국전통문화학교'가 부여에 설립되었다. 이에 비해 경주는 어떤가. 만일 김종필 전(前) 총리가 부여의 대학 설립을 위해 막후에서 노력했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도대체 이 지역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은 경주를 위해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경주는 대구와 경북이 광역자치단체로 분리되면서 최대의 피해자가 되었다. 그래도 지방자치제 이전에는 중앙정부가 최소한의 관심은 가졌었다. 하지만 대구와 경북이 분리되면서 경주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명약관화하게 예측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갈가리 찢어지고 있는 경주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행락객'들이 던져 주고 가는 돈마저도 자신들의 주머니 경제에 보탤 수 없는, 경주시민들의 삶과 철저히 괴리되어 있는, '천년고도'는 말짱 황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빠르고도 효율적인 대안은 중앙정부가 특별 관리하는 법률적'행정적 조치를 취하여, 경주를 대통령 직속 '문화역사관광 특구'로 육성해 나가는 길이다. 하지만, 이 대안은 최근 신공항 건설과 과학벨트를 둘러싼 작금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현 정부에서는 실현되기 어렵다.
차선책은, 대구와 경주를 통합하는 길이다. 대구의 현실과 미래도 경주와는 다른 이유이긴 하지만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메뚜기도 한철'인 줄 모르고, 권력이 영원할 줄 알았을 것이다.
대구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세상은 계속 변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주역'이 말하듯이, '변화'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20대와 30대가 대구보다 더 잘나가는 도시로 떠나가고 있는 변화를 아직도 팔짱 끼고 지켜볼 것인가. 그들이 떠나가고 있는 대구에 어떤 미래가 있는가. 광주처럼 특정 정당의 깃발만 나부끼는 도시의 앞날은 무엇인가. 변화를 부정하고 물이 고인 도시에 무슨 다양성이 인정될 것인가. 도대체 다양성의 씨앗이 싹틀 여지가 없다.
일본 교토를 보라! 교토도 대구처럼 지리적으로 분지이다. 하지만, 교토에는 젊음이 넘쳐 흐르니 도시가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일본 특유의 미학적 감각으로 문화역사와 상업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고 있는 교토를 심층적으로 공부하자. 대구와 경산과의 통합은 몸집만 불리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도쿄보다 노벨상 수상자를 더 배출했던 교토를 벤치마킹하자. 서울 중심의 한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싫다면, 차라리 대구와 경주를 통합하라!
이종찬(아주대 교수·문화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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