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찾아서] 20. 독자가 보낸 사연<9>

내 불효를 채찍질한 犬公 '캐리'의 슬픈 눈

어린 시절 한 없이 넓어만 보이던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가 됐지만) 운동장. 어른이 된 지금 그 운동장을 바라보노라면 아들의 손을 잡고 가끔씩 가보았던 유치원 앞마당처럼 오붓하게 느껴진다. 그 때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려면 까마득한 거리. 지금은 한달음에 갈 듯 좁아 보인다. 교실 속 책상과 걸상들도 마치 내가 걸리버여행기의 거인처럼 느껴질 정도로 앙증맞고 귀엽게 변했다. 아마 지금 내가 생각하는 \
'부전자전, 아니 조부전자전' 사진을 찍은 이진희 씨는 사진 속에 등장한 할아버지의 아들이며,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사진공모전 시상식에서 이 씨는 행복사연을 말했는데 이런 내용입니다. "어린시절 아버지와 함께한 시간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이를 계기로 아버지와의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정녕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나서보니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업무와 일상에 찌들려 아들과 함께해야 할 그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하고 있었던건 아닌지, 이게 바로 아버지의 모습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할아버지의 뒷짐진 모습을 그대로 따라하고 걷는 아들 모습이 어찌나 우습고 사랑스럽던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이제야 아버지의 가슴을 조금씩 느껴갑니다." 사진=이진희(효성병원 주최 제3회 1'3세대 공감 행복사진공모전 대상), 글=김수용기자
어린 시절 한 없이 넓어만 보이던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가 됐지만) 운동장. 어른이 된 지금 그 운동장을 바라보노라면 아들의 손을 잡고 가끔씩 가보았던 유치원 앞마당처럼 오붓하게 느껴진다. 그 때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려면 까마득한 거리. 지금은 한달음에 갈 듯 좁아 보인다. 교실 속 책상과 걸상들도 마치 내가 걸리버여행기의 거인처럼 느껴질 정도로 앙증맞고 귀엽게 변했다. 아마 지금 내가 생각하는 \'행복\' 또한 훗날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운동장\' 같은 추억이리라! 글'일러스트=고민석 komindol@msnet.co.kr

요즘은 애완동물이라는 말 대신 반려동물이라고 한다지요. 그저 데리고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며 감정을 공유하는 동물이라는 뜻입니다. 제 아무리 독불장군처럼 굴어도 결국 사람은 외롭습니다. 정을 주고받을 대상이 필요한 것이지요. 이번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캐리'라는 개는 그저 반려동물 차원을 넘어서 한가족이 된 듯합니다.

아파트에선 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합니다만 놀이터에 산책이라도 나올 때면 종종 개를 보게 됩니다. 그들에게 개는 감정을 공유하는 가족일 것입니다. 물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가끔 있습니다.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않는 탓이죠. 하지만 외로움을 덜어줄 대상에게 쏟는 정성이라고 생각하면 지나치게 감정의 날을 세울 것도 없습니다. '가정의 달'입니다. 함께 산다고 해서 가족은 아닐 겁니다. 놀이터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이렇게 푸념했습니다. "무심한 아들보다 살가운 개가 차라리 낫지."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견공(犬公) 캐리

캐리는 우리 집 애완견이다. 그를 굳이 견공(犬公)이라 높여 칭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함께 산 지 어언 7년. 사람으로 비교하면 중년이요, 눈치코치를 보자면 시쳇말로 단수 8단이다. 가령 식구들의 작은 움직임을 보고서도 벌써 무엇을 하려는지 빤히 속내를 들여다본다. 출퇴근 때는 꼬리를 흔들어 반기고 짖어 인사하며, 맞고 들이는 것은 일상이다. 주인 기분에 따라 조용하게 엎드려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며 눈동자를 굴리기도 하고, 제 기분이 상하면 아무리 불러도 돌아누워 하품하며 못 들은 척이다.

이러한 캐리도 견공이라 불리기까지는 결점투성이에 질타의 대상이고 평범한 애완견이었다. 아내가 운동 나갈 때 모자를 챙기면 으레 함께 가기를 자청하여 난리법석이고, 휴일 날 혼자 두고 외출이라도 하면 거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캐리가 우리 집에 오기까지는 사연이 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갓 태어난 놈을 우유병을 물려서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잠깐 방문을 열어 둔 사이에 누가 데려가 버렸다. 어머니는 캐리를 찾기 위해 동네방네 수소문하여 천신만고 끝에 강아지를 찾아 우리 집으로 데려온 뒤 키우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캐리는 가끔씩 어머니가 오시는 날이면 우리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오로지 옛 주인 곁에서 맴돌며 다른 사람은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으르렁댄다. 재 딴에는 옛정과 의리를 지키는 것이리라.

몇 달 만에 어머니가 집으로 오셨다. 더 야위고 기력도 쇠한데다가 왼쪽 수전증도 더 심해진 듯하다. 캐리의 눈에도 노구의 손이 떨리는 것이 안쓰럽게 보였을까. 한시도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쉴 새 없이 혓바닥으로 어머니의 떨리는 손을 핥고 또 핥았다. 캐리의 눈에는 평소와 다르게 수심이 가득 묻어나 보였다. 아내는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나는 부끄러움과 죄송함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모로 누워 주무시는 어머니 앞자리를 캐리가 차지하고 나는 등 뒤에 누워 잠을 청했다.

쪼그려 잠드신 노모의 야윈 등 뒤에서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는데 캐리는 여전히 떨리는 손을 핥으며 잠잘 기미가 없다. '금수보다 못하다'는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말 못하는 짐승의 성정을 보며, 약 한 제 해드리지 못한 죄책감이 밤새 졸음처럼 밀려왔다. 어머니는 하루 만에 집으로 돌아가시고 캐리는 옛 주인의 채취가 남은 물건을 찾아 킁킁거리다 끝내 기진맥진 드러누워 버렸다. 평소 마파람에 개 눈 감추듯 하는 간식도 마다한 채 미동도 없이 허공에 슬픈 눈길만 보낸다.

무언의 시위인가. 아무려면 놈이 나를 가르치려는 것은 아니겠지만 본능적으로 저에게 쏟은 어머니의 옛정을 잊지 않은 행동이라 생각된다. 어머니가 캐리에게 쏟은 정성이야 자식 사랑에 비하면 티끌에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어머니의 마음과 떨리는 손을 어루만져 주지 못하고 안타까워만 하고 있다. 사료만 축내고 오줌만 지린다고 핍박하던 놈의 슬픈 눈동자를 보면서 유구무언 견공(犬公)이라 칭하게 됐다.

권동진(수필가'열린큰병원 물리치료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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