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 옛 도심, 이야기로 살아난다] (20) 순종 황제 어가길

"황제를 일본으로 잡아간다"…수창학교 30여명 몸으로 철길 막을 계획

순종 황제가 대구역에서 하차할 때 환영하는 모습.
순종 황제가 대구역에서 하차할 때 환영하는 모습.
순종 황제의 대구 방문 당시 대구역 앞 환영인파.
순종 황제의 대구 방문 당시 대구역 앞 환영인파.
선화당에서 순종 황제의 환영식을 준비하는 모습.
선화당에서 순종 황제의 환영식을 준비하는 모습.
달성공원에서 환영식을 마치고 나오는 순종 황제 일행.
달성공원에서 환영식을 마치고 나오는 순종 황제 일행.

1909년 1월 2일, 신년 하례 차 통감 이토 히로부미 공작이 궁으로 들어왔다. 신년 하례식이 끝나고 이토는 황제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모양이다. 순종 황제의 마음은 불안했다. 을사년의 조약과 군대 해산에 반발하여 뜻있는 백성들이 방방곡곡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대구에선 나라의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지만 일진회를 비롯한 친일세력의 방해와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으로 대한제국의 앞날은 암울하기만 했다. 게다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 사건의 책임을 지고 고종 황제께서 일제의 압력으로 강제 퇴위하고 뜻하지 않게 순종이 타의로 황제로 즉위한 처지라 대한제국 황실도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였다. 정초부터 노회한 이토가 또 어떤 계략을 꾸미려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대한제국과 황실에 득이 될 것은 조금도 없을 것 같았다. 이토는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을 대동하고 왔다.

"폐하, 새해를 맞아 전국을 몸소 순시하여 백성의 생활상을 돌아봄이 어떠하겠습니까? 대일본제국의 메이지 천황께서도 철도 개통에 맞추어 민정을 시찰하신 선례가 있습니다. 새해부터 경부선이 개통된지라 폐하께서 철도를 이용하여 전국을 순시하신다면 그 의미가 클 것으로 사료됩니다. 을사조약을 통한 개방이 조선을 위한 것이고 대일본제국만이 구미 열강으로부터 조선을 보호할 힘이 있다는 사실을 만방에 보여줌으로써 지방의 소요를 잠재우고 백성의 안정을 도모하십시오. 저와 대신들도 같이 보좌하고 인도하겠나이다."

이토는 미리 작심하고 나온 듯 느닷없이 황제에게 전국을 순시하자고 제안했다.

"이토 공작, 전국적인 소요로 민심이 안정되지 못하고 유달리 매서운 추위 때문에 백성들의 고초가 극심하리라 익히 짐작이 되오. 말을 하고 보니 다친 듯 가슴이 아프오. 짐이 백성의 어버이로서 그 실태를 돌아보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당연지사이겠지만 이 엄동설한에 전국을 순시하여 본의 아니게 오히려 백성들에게 민폐를 끼치지나 않을지 걱정되오."

황제는 노회한 이토가 무슨 작당을 하려고 하는지 확실하지 않아 일단 혹한과 민폐라는 핑계를 대 완곡한 거부 의사를 표했다. 순간 이토의 눈초리가 살짝 들리고 입술이 실룩거렸다. 눈치를 살피던 이완용이 이토를 거들었다.

"폐하, 잘 아시다시피 불순한 쇄국 국수주의자들의 선동으로 민심이 흉흉하고 민생이 피폐한데다 극심한 혹한까지 겹쳐 나라와 백성이 여유롭지 못한 점, 저희 대신들 또한 책임을 절감하며, 폐하 앞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폐하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죄를 논하자면 드릴 말씀이 없사오나 이럴 때일수록 백성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백성들과 어려움을 함께하고자 하는 폐하의 어진 마음을 보여주심이 마땅한 줄 아룁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십시오."

황제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완용도 벌써 이토와 입을 맞춘 듯 이토의 편을 들었다. 이토는 직접 조선 팔도를 돌아보고 조선의 여론 동향과 백성의 생활상을 파악하여 침략의 강도와 속도를 조절하고 싶어했지만 을사조약과 군대 해산 이래로 일고 있는 극심한 반일감정과 항일 의병활동으로 일본인 거류민의 안전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토 통감만의 독자적인 전국 순시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런 차에, 경부선 개통은 이토가 직접 조선을 안전하게 순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메이지 천황의 선례는 든든한 원군이었다. 황제가 동행한다면 이토의 안전이 보장될 것이라는 것은 조선이 삼강오륜의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사실에서 쉽게 추론되는 것이었다. 황제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용안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폐하, 통촉하여 주옵소서!"

이완용이 무례하게도 황제의 긍정적 대답을 압박했다. 황제가 눈을 뜨자 이토는 손마디를 꺾으며 성질을 달래고 있었다.

"지방의 소요는 아직도 안정되지 않고 백성들의 곤란은 끝이 없는데 설상가상 심한 혹한마저 몰아치니 백성들의 곤궁이 더 극심하여질 것은 뻔한 일이니 짐의 마음이 아프오. 새해가 들었으니 우선 여러 유사 제신을 인솔하여 직접 나라 안을 순시하면서 지방의 형편을 시찰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하오. 그리 알고 조칙을 내리도록 하라."

황제가 이토의 제안을 마지못해 수락하자 그제야 이토의 표정이 풀어졌다.

"새로운 문물인 철도로 기차를 타고 먼 길을 순시하는 것이니 폐하와 대신들의 복장도 그에 맞도록 신경 써야 할 것이야."

명령조의 이토의 말은 외견상 이완용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황제에게 하는 말이었다. 황제는 분노가 치솟아 호통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어렵게 꿀꺽 삼켰다.

"총리대신, 백성들이 이번 순시를 오해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할 것이오. 황제폐하가 나를 수행한다든가 황제폐하를 일본 본토로 데려간다는 소문이 날 수 있으니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이오."

황제를 알현하고 나오는 길에 이토는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대신들을 돌아보며 또렷하게 두 번씩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몇몇 대신들은 황제에게 들리지나 않았을까 걱정스러웠던지 힐끗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토는 자신의 말에 겁먹은 대신들의 눈빛을 보며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황제는 못 들은 척 먼 산을 바라보았으나 왼쪽 뺨으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인왕산에 선 소나무 한 그루가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힘겹게 늘어져 있었다.

1909년 1월 6일 오후, 대구 수창동 수창학교 북편 공터(현 문화창조발전소)에 수창학교 학생 삼십여 명이 편을 갈라 나무토막을 들고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다. 짝을 지어 칼싸움을 하여 이긴 쪽이 의병 팀, 패한 쪽이 왜병 팀이 되었다. 왜병 팀은 일단 한 번 패한 아이들로 구성된 약체 팀인데다가 의병에게 져 주는 것이 애국이고 그들의 역할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맞고 도망가는 것이 그들에게 맡겨진 유일한 선택이었고 의무였다. 행여나 주제도 모르고 설쳤다간 뭇매를 맞기가 십상이었기 때문에 왜병이 되면 의병의 칼에 맞고 멋있게 죽어주는 것이 오히려 놀이에서 이기는 길이었다. 그렇지만 칼싸움을 하다가 보면 왜병이라는 본분을 잊고 승부욕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어 가끔 진짜 싸우기도 했다. 의병 팀 이상화(민족시인)와 왜병 팀 이여성(정치인'화가 이쾌대의 형)이 제각각 정의감과 승부욕에 사로잡혀 서로 흥분하여 진짜처럼 칼싸움이 붙게 되었다. 더 긴 각목을 사용했던 여성이 상화의 오른쪽 손등을 명중시킴으로써 상화가 각목을 놓치게 되었고 그 틈을 타 여성이 상화의 복부를 가격했다. 상화가 반칙이라며 여성의 각목 길이를 문제 삼았다.

"긴 칼을 사용하면 반칙이다!"

"전쟁에 그런 게 어디 있나? 이기면 장땡이지. 수창학교 학생도 아니고 우현서루에 다니는 놈을 끼워주니까 웬 잔소리야! 자꾸 까불면 다음부터 안 놀아준다."

"넌 왜병 팀이잖아! 왜놈이 이기면 나라가 망하는데, 너 진짜 매국노 하자는 거야?"

"알았다. 그러면, 다시 하자."

매국노가 된다는 상화의 말에 여성은 결국 상화의 칼에 맞고 장렬히 전사했다.

"얘들아, 내일 임금님이 대구에 와서 학교 앞으로 지나간다는 말 들었나?"

"임금님 행차한다고 역에서 달성토성까지 흰 모래 깔아놓았다 하더라."

"우리 임금님을 일본으로 붙잡아 간다고 하던데."

"그럼, 우리나라 망하는 거야?"

"국채보상운동으로 나랏빚 다 갚으면 나라 안 뺏긴다 하더니만…"

"매국노들 때문에 허사가 된 거 모르나?"

"그럼 어떡하지? 우리 임금님이 잡혀가는데 보고만 있어도 되는 건가?"

"그냥 있으면 안 되지. 어떻게 하든지 막아야지. 기차로 온다고 하니 철로에 드러누워서라도 길을 막자."

상화와 여성이 앞장서서 나서자 다른 사람들도 모두 찬성했다. 철로가 두 줄로 나 있으니 2개조로 나누어 한 조가 한 줄씩 막기로 계획을 세웠다. 임금님이 내일 오셔서 모레 떠난다고 하니 모레 1월 8일 새벽에 역전에 모여서 작전을 개시하기로 하였다.

1909년 1월 7일 목요일. 아침부터 대구역 앞에는 인파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하늘은 맑고 파랬지만 강추위는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고 맹위를 떨쳤다. 기적소리와 함께 연기를 내뿜는 기차가 플랫폼으로 서서히 미끄러져 들어왔다. 4만여 명의 인파가 숨을 죽였다. 오후 3시 24분이었다. 스물한 발의 예포가 울리고 황제가 손을 흔들며 상기된 표정으로 서서히 트랩을 내려섰다. 황제가 궁 밖에서 그의 백성들 얼굴을 처음 보고 백성들도 그들의 임금님 얼굴을 처음 보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황제는 백성들의 상상과는 달리 짧은 머리에 현대식 복장을 하고 있어 전통적인 황제의 카리스마가 별로 없었다. 4만여 명의 환영 인파를 헤치고 황제의 무개옥교가 대구 행재소(현 경상감영공원)로 향하고 그 뒤로 이토와 이완용을 비롯한 대신들이 말을 타고 뒤따랐으며 나머지 일행은 걸어서 행진했다. 상화와 여성을 비롯한 수창학교 학생 30여 명도 그 장엄한 모습을 지켜보며 숨을 죽였다. 성수만세(聖壽萬歲)의 환호가 황제를 따라다녔다. 황제의 무개옥교가 대구 행재소에 도착하고 난 후 환영 인파가 흩어질 무렵에 상화와 여성을 비롯한 수창학교 학생 30여 명은 학교 옆 공터로 돌아왔다. 그 다음 날의 거사를 한 번 더 점검할 목적이었다. 둥글게 둘러앉아 작전 회의를 할 찰나, 30여 명의 순경들이 학생들을 덮쳤다. 벌써 정보가 샌 모양이었다. 나이 어린 학생들, 그것도 30여 명이나 되는 많은 학생들이 극비리에 거사를 도모한다는 것 자체가 다소 무리였던 모양이었다. 지레 겁먹은 누군가가 거사 내용을 부모님에게 일러바치고 그 부모님이 경찰에 신고한 것이 분명했다. 거사 미수에 그친 30여 명의 애국 소년들은 황제가 남방 순시를 마치고 환궁한 그해 1월 13일까지 경찰에 의해 보호 조치되었다.

1909년 1월 12일 오전 11시 35분, 부산에 갔다가 환궁하는 길에 다시 대구역에 내린 황제는 북성로를 거쳐 수창학교 앞으로 난 길을 따라 달성공원을 방문하였다. 그 어행(御行) 길에는 애국지사 양성소 우현서루와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광문사가 황제를 맞아주었고, 우국충정에서 황제의 기차 길을 막으려 했던 애국소년들과 그들이 다녔던 수창학교가 있어 황제는 외롭지 않았다. 황제는 우현서루와 광문사, 수창학교 근처에 이르자 친히 무개옥교에서 내려 측근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하는 등 그 지역에 대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토는 황제를 앞장세워 전국 순시를 무사히 마쳤다. 대구의 수창학교에 다니던 30여 명의 어린 학생들의 저항 외에는 별다른 저항이 없음을 확인한 이토 히로부미는 병합의 시기가 무르익었음을 확인하고 그 이듬해인 1910년 8월 29일 마침내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하였다.

"조선은 긴 역사와 오랜 전통을 가진 심지가 깊은 나라이고 사회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는 양반들은 선비정신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나라를 빼앗기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쉽게 병탄한 것 같아 기분이 아주 좋아. 그거 알아? 황제를 일본으로 잡아간다는 소문을 내가 고의적으로 퍼뜨린 것 말이야. 우리 대일본제국이 조선을 병탄했을 경우, 그 저항의 강도를 가늠해 보고 싶었던 거야. 황제를 본토로 잡아간다고 소문을 퍼뜨려도 별 저항이 없더라고. 그게 코흘리개 대구 학생들의 철로 점거 계획을 한층 돋보이게 했지. 용감한 수창학교 꼬맹이들의 유치한 듯한 저항이 의병들의 봉기보다 오히려 신선하고 기특하고 또 경이로운 감동으로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아. 그 외에는 너무 순조롭고 일방적이어서 아쉬운 감마저 들어. 전국 순시로 나는 병합의 시기가 무르익었다는 확신을 얻었어. 나의 순시를 황제가 경호해준 것은 나의 안전에 큰 도움이 되었지. 나를 암살하려 한다는 정보가 있었지만 황제 덕분에 무산된 셈이지. 조선의 충효사상은 정말 본받을 만해. 그래도 막상 조선을 병합하고 보니 정말 까다로운 적을 잘 처리한 것 같아 앞으로의 대동아공영권 수립에 서광이 비치는 것 같아. 나도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군. 우리 일본은 이제 크게 일어나 세계를 지배하게 될 거야."

이토가 성공에 취해 하는 말들을 잠자코 듣고 있던 이완용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글쎄요, 벌써 끝난 걸로 생각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을까요? 한민족의 악착같고 끈질긴 면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겨우 시작일지도 모르지요."

오철환 소설가 대구광역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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