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탈수록 클래식의 매력 속으로… '올드카'의 세계

"10년은 명함도 못 매밀죠"

김준우 씨가 국채보상운동공원 주차장에서 자신의 애마인 1990년산
김준우 씨가 국채보상운동공원 주차장에서 자신의 애마인 1990년산 '코란도 롱바디' 차량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사진 위) '스텔라' 차량 주인으로 인근에서 소문이 자자한 김봉철 씨가 자신의 '애마 차량'과 함께한 모습.(사진 아래)

'한국만의 빨리빨리 문화가 쫓아낸 올드카. 자동차도 올드 가수 모임 '세시봉'처럼 오랠수록 가치가 빛나는 명품이 될 수 있을텐데.'

뭐가 그리 급한 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세상이다. 해방 후 압축성장을 해 온 대한민국에서는 '바꿔'라는 말이 대세를 이뤘고, 그것이 마치 혁신인 양 정신문화가 뒷받침되지 못한 상태에서 'Brand new', 요즘 유행하는 말로 '신상'(신상품)에 매달려왔다.

이런 '빨리빨리 문화'에 대한 반발과 역작용으로 요즘은 '슬로우 라이프'와 '복고풍'이 주목받고 있다. 이와 함께 오래된 물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수천만원, 억대에 이르는 자동차가 즐비한 시대에 희소성 측면에서 올드카는 단연 눈길을 끈다. 교차로에서 차들이 대기하고 있을 때 렉서스나 벤츠, 혼다보다 오히려 르망이 더 튀어보이기도 한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올드카에 대한 대접이 우리보다 나은 편이다. 아직도 수동 변속기 차량이 적지 않다. 실제 유럽여행을 위해 렌트카 업체에 차를 빌리려고 하면 '오토'보다 '수동' 차량이 더 많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와 달리, 오래된 차를 선호하는 부자들도 많다. 차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자신의 인생에 동행해 준 올드카를 폐차되기 전까지 버리지 않고 잘 관리한다는 것이다. 올드카를 그대로 간직하면서, 신차를 구입하는 이들도 있다.

올드카를 타고 다니는 이들은 '아직도 충분히 잘 굴러다니며, 그만한 가치를 갖고 있다'며 많은 수리비, 부품 교체 비용 등을 감수하고 있다. 20년 이상 타는 자동차가 뭐가 그리 좋은지 올드카의 세계로 한번 빠져보자.

◆1990년형 '코란도 롱바디'

아마추어 도예가이자 아이디어 사업을 하고 있는 김준우(38·대구시 동구 효목동) 씨의 차량은 어디에 주차해 놓아도 한눈에 띈다. 특히 지하 주차장이나 공원 같은 넓은 곳이면 더욱 그렇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차량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 '좌표'가 되기도 한다. 김 씨의 '애마'는 1990년 생산된 코란도 원형 롱바디 차량이다. 그것도 빨간색이어서 작은 소방차같기도 하다.

그가 이 차량을 탄 지는 만 10년이 됐다. 클래식한 느낌의 코란도 첫 모델의 디자인을 선호했던 김 씨는 10년 전 때마침 한 공기업에서 쓰던 이 차량을 처분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30만원을 주고 구입했다.

코란도 롱바디 차량은 당시에도 좋은 모델이었는데 잠시 인기를 누리다 주로 중진국이나 후진국에 수출되는 차종이었다. 김 씨는 이 차가 출고된 21년 전 모습 그대로 유지하도록 관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튜닝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

굳이 이 차의 단점이라고 하면 고속도로에서 최대 시속이 100㎞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사실, 속도를 더 낼 수도 있지만 차를 아껴서 더 오래 타고 싶은 욕심에 무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어딜가도 주목을 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며 "실제로 가까운 곳에 놀러갈 때도 아주 공간 활용도가 높으며, 가족들도 이 차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스텔라' 타는 멋쟁이

삼계탕 식당을 하는 김봉철(75) 씨의 트레이트 마크는 단연 애마 스텔라다.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생산된 수출용 차량이다. 수동이 아니고 그 시절엔 귀했던 오토 차량이다. 원래 타고 다니던 차도 스텔라. 1984년형 수동형 차량이었는데 아내가 운전면허를 따자, 큰 마음을 먹고 같은 종류인 오토 차량을 구입했다.

오토로 된 스텔라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곳곳을 수소문하고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한 덕분에 250만원을 주고 지금의 스텔라를 구입할 수 있었다. 판매자는 '희소성'을 내세워 300만원을 불렀지만 '마라톤 협상' 끝에 50만원을 깎은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자동차의 웬만한 것은 혼자서 다 고치고 관리하는 그였지만, 오래된 엔진과 각종 부품을 교체해야 했다. 차 값의 두 배가 넘는 600만원의 비용이 들었다. 경차 1대나 쓸만한 중고차 1대를 살 정도의 액수다.

하지만 그에게 이 수리비는 결코 아깝지 않다. 업그레이드된 클래식한 분위기의 스텔라를 계속해서 탈 수 있게 됐으며, '삼계탕집 사장=스텔라'라는 트레이드 마크를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이 더 큰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장단점은 있다. 밖에 나가면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질 정도로 인기가 좋다. '아직도 저런 차를 타고 다니냐'는 괄시의 시선보다는 '어떻게 관리해서 이런 멋진 올드카를 타고 다닐까'라는 존경의 시선이 더 많다. 이에 더해 오랜 차량이다 보니 차량 가격이 낮게 책정돼 보험료도 싸다. 물론 수십년 무사고 경력 때문에 전국에서도 보험료 적게 내는 사람으로 치면 손가락에 꼽힐 정도라고 한다. 단점은 아무래도 비싼 수리비인데 장점을 생각하면 감내할만 하다.

그는 "바퀴, 엔진, 축 등 자동차의 기본적인 정비는 제가 거의 다 할 정도며, 그렇기 때문에 올드카를 더 오래 탈 수 있는 것"이라며 "한 번 타 보면 새 차보다도 더 안정감이 있고, 공간 활용도도 높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삼륜차·포니·엑셀·프레스토 등도

마치 골동품을 연상시킬 정도의 차들도 도로에서 간혹 볼 수 있다. 이들 차량을 보면 추억이 떠오르고 반갑기만 하다.

40~50년 전 도로에서 볼 수 있었던 1969년산 2.5t 기아 삼륜자동차가 아직도 거리의 보물단지처럼 대구 동구 팔공산 일대에 한 번씩 나타난다. 대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김모(51) 씨 역시 1989년산 포니2 픽업트럭을 타고 다니며 주변 이웃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1989년 전산시스템 도입으로 첫 발급 받은 차량 번호판 '대구 1가 1000'의 프레스토 차량도 20년 가까이 차주 이실경 씨와 함께했다. 엑셀을 20년 가까이 탄 김모 씨는 아예 승용차 오래타기 운동을 주도하며, 올드카에 세금 감면 등의 다양한 세제혜택을 줘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자동차 오래타기 운동을 하고 있는 SM모터스 송민호 대표는 "앞으로 자동차 10년 타기를 통한 신차불이(身車不二), 국산차 사랑운동을 비롯해 오래된 자동차의 원할한 부품 공급(단종 후 10년)을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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