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근대미술사는 한국의 근대미술사와 그 흔적을 같이 한다. 비슷한 시기에 거의 동시적으로 전개됐기 때문이다. 대구지역 미술을 빼놓고는 우리 근대 미술사를 연구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대구의 근대미술사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미술평론가 김영동이 1년2개월 동안 매일신문에 '대구 근대미술 산책'이란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묶어 '근대의 아틀리에'(한티재 펴냄, 267쪽, 1만5천원)를 펴냈다. 총 60여 점의 작품을 통해 거꾸로 대구의 근대미술을 더듬어 보여주고 있다.
역사성이라는 씨줄과 현대성이라는 날줄이 엮어져 미술사를 더욱 풍성하게 보여준다.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재능이 만나 한 점의 명화가 탄생한다.
이 그림들을 통해 근대미술이 형성되는 과정을 알 수 있는 것과 동시에 근대의 도시 풍경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서동진의 1920년대 후반 작품 '은행이 있는 거리'를 보면 당시 조선은행 대구지점을 묘사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 그림 속에서 역사의 이면을 읽어낸다. 행인이 없는 텅 빈 도로, 감각적인 활기가 없다는 점을 들어 작가의 민족적인 아우라를 읽어내려는 시도 등이다.
1930년대, 이인성과 비견되는 재능으로 큰 명성을 얻었던 소년화가 김용조가 있었다. 하지만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천재라 잊혀졌다. 그가 그린 창주 이응창 초상에는 사색적인 젊은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이응창은 김용조에게 그림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고 화실까지 마련해준 스승이었다. 이처럼 그림은 작가와 모델에 대해서도 공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이해를 돕는다.
이인성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은 또 어떠한가. 색채감각이 뛰어나고 형태를 그려내는 능숙한 솜씨로 작가의 천재성을 읽을 수 있는 이 그림의 뒤에도 개인사가 숨어 있다. 그림 속 젊은 여인은 후에 그의 부인이 된 대구 출신 일본 유학생 김옥순이다. 좋은 환경에서 자라 의상디자인을 공부하러 간 신여성과 일본에서 사귀고 있을 당시의 그림이다. 이 그림을 그린 이듬해 둘은 결혼을 한다.
자칫 빈약하게 역사 속 창고에 머무를 수 있는 그림들을 끄집어내 특유의 정감어린 시각으로 바라본 저자의 따스함이 느껴진다. 그림을 둘러싼 작가 이야기와 역사 덕분에 한층 풍부하게 살아있는 피와 살을 가진 역사로 재탄생한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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