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

죽음이 오고 있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우리에게 죽음이 벌써 왔다. 철학적인 죽음과 다르게 의학적으로 죽음을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제껏 겪지 못했던 감정의 변화를 느낀다. 이 넓은 세상에 혼자 던져진 느낌이다. 환자를 통해서 간접적인 죽음을 경험했지만, '엄마에게 암이 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 또한 잔인한 5단계의 변화를 겪어야 했다. 고통스러웠다.

정신과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에 따르면 부정, 분노, 타협, 우울 그리고 수용의 5단계를 거치면서 죽음을 받아들인다고 했다. 환자와 보호자는 마치 함께 암에 걸린 것처럼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각 단계는 서로 엉켜져 있기도 하고, 거꾸로 가기도 한다. '부정과 수용의 마음을 동시에 가지는 것'이 전혀 어색하거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

나의 환자 모두를 법정 스님으로 만들 수도 없을 뿐더러, 만들 필요도 없다. 죽음 직전까지도 5단계의 역동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삶의 완성을 위해 살아간다. 삶의 5단계와 죽음의 5단계는 근본적으로 같다. 조금 남은 삶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내가 과연 추구하는 인생은 어떤 것인지 깊숙이 빠져들자. 혼자 살 수는 있지만, 혼자 죽을 수는 없다. 삶의 완성을 위해서 우리는 서로를 도와야 한다. 사회봉사의 거대한 치유력만이 갑자기 들어닥치는 '죽음의 폭력'에서 구원할 수 있다.

누구나 첫 경험이자 마지막 경험이므로, 더 늦기 전에 '죽음과 죽어감'을 공부해야 한다. 감정 변화를 미리 겪은 인생의 선배인 나의 환자가 속삭여준 이야기를 통해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알았다. 무서움과 두려움으로 눈이 멀지 말고, 끝까지 같이 가보자. 따뜻하고 평화만 있는 길은 아니지만, 나는 환자에게서 환자는 나에게서 무언가를 주고받는다. 죽음은 한 순간이지만, 그 순간에 이를 때까지는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안 아프면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러 왔겠어요?" 식구라고는 20대 미혼인 딸 한 명밖에 없는 50대 중반의 말기 유방암 환자가 드디어 죽음을 각오하고, 죽음의 병동 호스피스에 입원했다. '아프시냐'는 물음에 까칠하게 답하는 걸 보면 아픈 것과 죽음을 같이 생각하는가보다. "아픈 거 치료하시고 하루라도 더 사셔야 해요.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처음 보는 그녀의 마지막 의사 앞에서 울었다.

호스피스 병동은 행복하게 죽는 곳이 아니다. 어떻게 사람이 행복하게 죽을 수 있을까? 대부분의 환자는 행복하게 살다가 슬픔 속에서 떠난다. 슬픔을 불행으로 만들지 않는 열쇠가 호스피스다. 호스피스 병동에 오는 것은 생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인 또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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