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발표前 슬쩍 흘리기 '신공항때 수법' 재미 붙였나

정치논리가 망가뜨린 과학벨트

15일 오후 경북도청 광장에서 열린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 범시도민 궐기대회에서 한 유치위원이
15일 오후 경북도청 광장에서 열린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 범시도민 궐기대회에서 한 유치위원이 '결사 쟁취' 혈서를 쓰고 있다.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단군 이래 최대 과학기술 프로젝트'이자 이명박 정부 후반기 최대 국책사업으로 손꼽히며 유치 경쟁에 나선 지역들을 꿈에 부풀게 했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가 입지 선정 발표도 나기 전에 논란에 휩싸여 풍랑을 겪고 있다.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과 정치논리가 과학논리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동남권 신공항 때와 판박이

정부 발표 이전에 거물급 정치인들이 바람잡듯이 백지화 언급을 한 신공항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이다. 발표 이틀 전에 본원 대전 확정이라고 보도가 되는 등 언론플레이의 냄새가 짙기 때문이다.

16일 오후 발표라는 예고를 무시하듯 14일 아침부터 일부 언론은 "대전이 과학벨트 입지로 최종 확정됐다고 알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치권 인사들의 입을 통한 보도였다. 공식 절차상으로는 과학벨트 최종 입지는 16일 오전 과학벨트위원회 분과위인 입지평가위원회 회의와 과학벨트위 전체회의를 잇따라 거쳐 확정, 발표하도록 돼 있었다.

교과부 과학벨트기획단의 한 관계자는 14일 '대전 확정' 보도가 나간 직후 전국이 발칵 뒤집히자 "집계가 되지 않아 평가 결과를 아직 총리실에 주지도 못했는데 어떤 근거로 확정됐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사실 관계를 부인했다. 정정보도 요청도 했다. 그럼에도 언론은 계속해서 '대전 확정적'이라는 보도를 이어가며 정부의 부인을 무색하게 했다.

먼저 교과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치권 인사들이 추측성 언급을 했다가 '확정설'로 퍼졌을 수 있다. 그러나 교과부의 설명과는 달리 이미 정부가 평가를 마쳤고, 5개 최종 후보지의 순위가 새어나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대국민 약속 위반이다.

◆과학기술계도 "황당하다"

벌써부터 여타 지자체들은 이번 과학벨트 입지 선정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영남권에서는 15일 오후 6천여 명이 경북도청에 모여 궐기대회를 가졌다. 김관용 경북지사의 단식과 이상효 경북도의회 의장의 삭발에 이어 도내에 가동 중인 원전 가동 중단과 방폐장 건설 반대 카드 동원 가능성도 언급될 정도로 분위기가 격앙됐다.

호남권에서도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강운태 광주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명을 내고 "짜맞추기식 정략적 심사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선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하라"고 주장했다.

16일 공식 회의를 앞두고 존재 자체를 '무시'당한 과학벨트위원들도 불만을 터뜨렸다. 한 위원은 "확정 소식을 듣고 황당했다"며 "다른 위원들도 비슷한 반응"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위원은 "경위를 따지겠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과학기술계는 과학벨트 프로젝트가 불필요한 정치권 개입과 이에 따른 정당성 훼손으로 출발부터 발목을 잡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 연구단 '지역 배치' 관심

16일 과학벨트위가 기초과학연구원 소속 연구단 배치를 어떻게 결정할지도 '정치적 결정'과 관련,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기초과학연구원 산하에는 연구 테마 중심으로 독립적인 50개 연구단이 운영되는데, 본원에 절반가량인 25개가 배치될 전망이다. 나머지 25개 연구단의 경우 국내외 역량 있는 대학'연구기관 등을 사이트랩(Site-Lab) 형태로 지정한다는 것이 당초 정부 과학벨트 종합계획 등에 명기된 원칙이다. 그러나 본원에 들어가지 않는 나머지 연구단이 거점지구 최종 후보지 5곳에 올랐다가 탈락한 지역에 집중 배치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과학벨트위의 한 관계자는 "본원 외 연구단(사이트랩)의 경우 정부도 나름대로 정치적'지역적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더라"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치적 배려를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탈락 후보지 가운데 경북권(대구'울산 포함)과 광주에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포스텍(포항공대), 울산과기대(UN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을 포스트로 연구단의 일부가 배치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본원 유치 실패 지역의 반발 강도가 거세 이들 기관 배치가 순항할지는 의문이다.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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