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울 큰언니

우리 큰 언니는 스물두 살, 너무 일찍 시집을 갔다. 내가 여섯 살 때였다. 큰언니와 금수탕에 목욕을 갔다 발갛게 된 얼굴로 대문에 들어서자, 일층 안방 뜨락엔 낯선 신발이 즐비했고, 부엌에서 친척언니가 황급히 뛰어나와 큰언니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살거렸다. 갑자기 홍당무처럼 얼굴이 빨개진 큰 언니는 목욕통을 친척언니에게 냅다 안기곤 이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어리둥절해 있는 내 손을 끌고 친척언니가 부엌으로 가 생과자 몇 개를 쥐여 주곤 안방엔 얼씬도 말라고 엄포를 놨다. 부엌엔 예쁘게 모양을 내어 자른 삶은 계란과 떡 그리고 알록달록한 생과자 봉지가 부뚜막에 수북이 놓여 있었다. 맥주와 설탕에 절인 생강, 명태포와 마른 오징어도 가득했다.

목욕탕에 가기 전과 너무 다른 집안 분위기에 휘둥그레 부엌 여기저기를 훑어보는 내게 커다란 사과 한 알을 또 쥐여 준 친척언니가 큰언니에게 가보라고 했다. 살짝 열린 안방문 앞을 얼쩡대다가 친척언니의 낮게 혀 차는 소리를 듣고 큰언니에게 갔다. 이층 창밖을 내다보던 큰언니의 얼굴은 그때까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사과를 내밀어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곤 한참을 있다가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내게 안방에 가서 몇 시인지 시계를 보고 오라고 했다. 옳다구나, 쪼르르 달려가 안방 문을 벌컥 열고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큰언니가 지금 몇 시냐고 물어! 그때 나를 돌아보는 부모님과 낯선 손님들 사이에서 나는 여태까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잘생긴 사람을 보게 되었다.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끌어 손님들에게 인사를 시켰지만 내 눈은 온통 그 미남에게 가 있었다.

몇 달 뒤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친구들과 동촌 구름다리에 가 하얀 양산을 든 채 사진을 찍고(물론 나도 따라갔다. 무슨 일이 있었던지 흑백사진 속에서 나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지만), 큰오빠가 시켜 억지로 모기 소리만하게 '형부'라고 불러 본 그 미남과 동춘서커스 구경도 다녀오고, 동아극장과 한일극장의 영화도 몇 편 본 뒤 큰언니는 그 미남과 결혼했다. 삼층 옥상에서였다.

그리곤 어느 날 갑자기, 매일 나를 챙겨주던 큰언니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몇날 며칠을 아침마다 울며불며 생떼를 썼지만 큰언니는 오지 않았다. 처음 친정 온, 내게 생애 최초로 극심한 상실감을 안겨 준 큰언니의 무릎을 베고 사레들려 울다가 잠든 기억은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아슴푸레하다.

박미영(시인, 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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