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카네이션과 효도화

1950년대 영화 중 'love in the afternoon'이란 영화가 있다. '하오의 연정'이란 다소 복고풍의 낭만적인 한글 제목으로 소개됐던 영화다. 만인의 연인 오드리 헵번이 파리음악원에서 첼로를 전공하는 순진한 아가씨로 나오고, 중후한 신사의 대명사 게리 쿠퍼가 그녀의 상대역으로 나온다. 어느 날 게리 쿠퍼는 오드리 헵번의 가슴에 꽃 한 송이를 꽂아주는데, 그녀는 이것을 냉장고에다 넣고 애지중지 간직한다. 그 애틋한 사랑의 꽃은 '카네이션'이었다.

카네이션의 꽃말은 '당신을 열렬히 사랑합니다'이다. 5월 8일은 그 카네이션의 의미가 더욱 빛을 발하는 날이다. 부모님의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날,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신 우리들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어버이날'이었다. 그래서 카네이션에는 '열렬한 사랑' 외에도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존경'이란 뜻도 담겨 있다.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주는 풍습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1900년대 초 버지니아주의 안나 자비스라는 여인이 자신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추도식에 온 사람들에게 흰 카네이션을 나누어 주면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안나의 어머니는 생전에 헌신적인 봉사활동으로 마을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고, 그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안나는 평소 어머니가 좋아하던 카네이션으로 추모하며, 자신의 어머니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기념할 수 있는 날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현재 세계 50여 개국이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을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를 받아들여 1956년 국무회의에서 어머니날을 정했고, 이후 1973년에 어버이날로 개칭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부모님을 향한 존경과 감사에는 국경이 없다. 언어와 문화와 역사가 달라도 이것만큼은 세계 만국 공통의 하나 된 감정이다.

얼마 전 신문을 보다가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어버이날에 카네이션 대신 복숭아꽃을 달자는 한 지자체(수원시)의 캠페인이었다. 이름 하여 '효도 꽃 달아드리기' 운동. 예로부터 복숭아는 무병장수를 상징해 왔다. 우리 역사에도 조선의 정조 임금이 그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서 복숭아꽃 3천 송이를 헌화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효도 꽃 달아드리기 운동은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유래한 카네이션보다는 수백 년의 전통과 역사가 있는 복숭아꽃을 달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복숭아꽃에 담긴 효의 의미를 기려 복숭아 도(桃)자를 써서 효도화(孝桃花)라고 이름을 붙인 것인데, 듣고 보니 일면 고개가 끄덕여지고, 나름 의미도 있어 보인다.

사실 카네이션이든 복숭아꽃이든 어떤 꽃이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둘 다 부모님을 향한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으므로 일단 의미에서 손색이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둘 중 무엇이라도 그 꽃을 준비하는 자식 된 심정은 한결같기 때문이다. 부모님에 대한 절절한 사랑의 마음을 꽃에다 담았다는 그 자체로 아름답고 고귀하다.

최중근 구미탑정형외과연합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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