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민기자] '공짜 도시락' 으로 끼니때부터 챙기는 선술집 '3학년 4반' 강숙희

"빈 속에 술만 먼저 찾으면 나한테 혼나죠"

3학년 4반에서 만나 모자의 정을 이어오는 강숙희(왼쪽) 씨와 김병호 화가.
3학년 4반에서 만나 모자의 정을 이어오는 강숙희(왼쪽) 씨와 김병호 화가.

"아이고 어서 오너라. 니 밥 묵었나? 엄마가 도시락 하나 만들어 주께."

대구시 중구 대봉동 선술집 '3학년 4반'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단골들 사이에 '교장쌤'으로 통하는 주인 아주머니의 살갑고 따스한 목소리가 반긴다.

이름도 특이한 이 선술집에서 가장 먼저 선택해야 할 '메뉴'는 '끼니때 챙기기'. '술은 뭘로 안주는 또 뭘로…'가 아니라 술 먹기 전에 빈속부터 채우라는 '교장쌤'의 마음이다. 이곳 이름과 어울리게 노란 도시락에 계란 프라이까지 곁들여 간단한 요기로는 과하고 고맙다. 물론 공짜다.

사람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교장쌤' 강숙희(66'여) 씨의 푸근한 정나눔은 벌써 10여 년째.

"어렸을 적 가난해서 하고 싶은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밥을 굶을 때가 많았는데 내 가게를 찾아오는 아들, 딸 같은 젊은이들에게 엄마의 마음으로 잘 차리지는 못하지만 따뜻한 밥을 챙겨야 마음이 편해요."

화려한 메뉴는 아니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 정들기 딱 좋은 곳이니 단골도 대부분 이곳의 세월과 함께했다. 동네 사랑방처럼 불쑥 이곳을 찾는 동네 아저씨들, 학생이었다가 사회에 나가 다시 찾는 회사원'의사'변호사,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예술인 노동자들…. 이들 모두가 '3학년 4반' 동급생인 셈이다. 이들은 때로 '교장쌤', 때로는 '어무이'로 부르며 강 씨를 따른다.

나무 책상과 걸상, 난로, 낙서…. 타임머신을 타고 아날로그식 1960년대 교실로 돌아간 듯한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3학년 4반'의 10년 단골 김병호(43'화가) 씨는 강 씨를 '어무이'로 부르는 쪽이다.

"긴 세월 동안 지인들과 이곳을 자주 찾다 보니 나도 모르게 깊은 정이 들었나 봐요. 강 여사님은 저의 친어머니께서 간경화 말기로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실로 직접 찾아와 위로해 주시기도 하고, 제 개인전 때도 축하차 방문해 그림 못 사줘서 미안하다며 그림 앞에서 눈물을 훔치기도 하셨어요. 마치 한가족처럼 다정하게 대해 주시니 그냥 술집 주인이 아니라 엄마와 다를 바 없어서 '어무이'라고 부르고 지낸답니다."

강 씨는 어릴 적 꿈이 교사였다. 하지만 그 시절 똑똑하다고 한들 여자가 고등학교 가기가 쉽지 않아 중학교에서 꿈을 접어야 했다. 때로 문학소녀를 꿈꾸기도 했던 그가 어떻게 '술집 주인 아주머니'가 됐을까.

"20년 전 46세의 늦은 나이에 방송통신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슴에 안고 배움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었죠. 그러다 아들이 이 가게를 열고는 사정이 있어 그만두게 됐고, 제가 소일 삼아 시작했는데 좋은 사람들과 정이 들어 '속 없는 장사'를 계속하게 됐죠."

'3학년 4반'이라는 이름엔 강 씨의 추억도 숨어 있다. 지금은 장성한 강 씨의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 4반이었기 때문. 그래서일까. '3학년 4반' 학생들과 이야기가 길어지는 날이면 멀쩡한 집을 놔두고 이곳 '교실'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는 '교장쌤'. 아들과 어머니가 만나면 "우리 한 반이네"라며 박장대소하는 흐뭇한 그림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글·사진 이철순 시민기자 bubryun@hanmail.net

멘토:김대호기자 dhkim@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