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이 따로 정해지고, 가족 간의 사랑을 학습해야 하는 세태. 과연 무엇이 삶의 목적이고, 팍팍한 현실의 너머에는 무엇이 기다리기에 그저 '조금만 기다리자', '점점 나아질거야'라며 스스로 세뇌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1997년작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이탈리아 영화. 극악한 파시즘이 맹위를 떨치던 1930년대 말 이탈리아가 배경이다. 주인공 귀도는 초등학교 교사인 도라와의 운명적인 만남과 사랑 속에서 아들 조슈아를 낳는다.
영화 전반부는 평화롭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하지만 독일의 유태인 말살 정책이 시작되면서 이들 가족에게 불행이 닥쳐온다. 유태인인 귀도와 조슈아는 수용소에 끌려가고, 도라는 유태인이 아니지만 가족을 따라 수용소로 들어간다. 죽음의 공포.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던 사람들이 매일 죽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봐야하는 공포. 그런 공간 속에서도 귀도는 사랑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아들에게 속삭인다. "조슈아! 이건 게임이야." 귀도는 자신들이 특별히 선발된 사람이며, 1천 점을 제일 먼저 따는 사람이 1등상으로 진짜 탱크를 받게 된다고 설명한다. 두 사람은 살얼음판을 걷듯 위기를 수 차례 넘기며 끝까지 살아남는다. 그리고 마침내 독일의 패망. 그러나 혼란의 와중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귀도는 독일군에게 발각돼 결국 사살당한다. 영화는 전쟁과 죽음의 광풍 속에서도 사랑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역설한다.
조지 오웰은 역작 '1984'를 통해 전체주의의 위험을 전하고 있다. '빅 브라더'로 대변되는 지배당은 영원한 집권을 위해 역사를 조작하고, 사랑을 박탈하는 정책을 편다. 민중들은 비참한 현실을 깨닫지 못한다. 조작된 과거 탓에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 민중을 지배하기 위해 역사를 바꾸는 수법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도 똑같이 나온다.
아울러 사랑이라는 감정을 말살하기에 이른다. 남녀 간의 사랑은 인정받을 수 없고, 부부 관계는 오로지 자식을 '생산'하는 목적으로 이뤄진다. 자녀는 지배당의 교육 속에 부모를 감시하는 작은 스파이로 성장하고, 자식에게 고발당한 부모는 어느 날 갑자기 존재 자체가 '증발'해버린다. 그런 자식은 '영웅'으로 대접받고, 그리고 이런 모든 상황들이 당연시된다.
지배당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남녀 간, 가족 간의 사랑이다. 아울러 사람과 사람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최대의 적으로 간주한다. 사랑은 만족과 평온을 낳는다. 지배당에 대한 충성심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때문에 빅 브라더는 사랑을 증오로 돌리는 정책을 택한다. 직장 동료가, 자식이, 이웃이 자신을 고발할까봐 늘 두려워하고, 조금이라도 낌새를 차리면 먼저 고발하려고 든다. 주인공 윈스턴은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포(여기서는 거대한 시궁쥐)와 맞닥들이는 순간,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연인 줄리아를 저버리고 만다. 사랑을 잃는 순간 희망도 사라지고, 그저 맹목적인 생존만 남게 된다.
수많은 책들이 다양한 행복법을 말한다. 하지만 가족 간의 사랑을 강조하는 책은 거의 없다. 이유는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에. 그런데 너무 당연해서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TV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보며 짐짓 놀란다. 저런 극한 상황에 놓인 가족들이 어떻게 매주 출연할 수 있을까?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현재의 행복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늘 등장한다. 바쁘다며, 돈을 벌어야 한다며 그래야 나중에 잘 살 수 있다며 스스로를 세뇌하는 사람들. 그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이야기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현대인은 사랑을 박탈당했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속에 온갖 쓰레기가 들어차고 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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