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저축은행 부실, 못된 짓 따라하기

한국을 잠시 떠났다가 돌아왔다. 글로만 쓰는 미국 경제 보고서가 갖는 한계를 조금이나마 극복하려면 그래도 3, 4달에 한 번쯤은 미국에 다녀오는 방법을 생각해본다. 무슨 호사스런 생각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수백만원이 드는 '투자'다. 남대문을 가보지 않고 가봤다고 우기는 짓을 하기 싫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 1.8% 성장을 한 미국 경제가 연말까지 어떻게 연평균 3%대 초반의 성장을 할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도 미국 경제 전망 보고서를 밝게 얘기했지만, 현지에서 느낀 바는 '글쎄?'다. 실업률은 10%대를 육박하다가 8.8%로 하락했지만, 여전히 노동시장은 겨울이다. 저임금 계약으로 고용이 되고, 따라서 많은 노동자들이 집을 사거나 레저를 즐길 여유를 부리기엔 아직은 때가 이르다. 금리가 낮으면 뭘 하나? 돈을 빌릴 수도, 빌려서 쓸 데도 없다.

반면에 기업은 호황이다. 불황을 맞아 구조조정 끝에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노동 비용을 절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규 채용과 임금계약을 가능한 한 최저액수로 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의 호황이다. 미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자산 유보 규모가 2조달러에 육박한다는 점이 이를 대변한다. 그러니 주식시장이 좋고 채권시장은 나쁘다. 채권은 고정된 수익을 보장하지만, 10년 만기 재무성 채권이 3.6%의 수익률을 보이는 반면 주식시장은 호황이다. 더구나 6월이면 양적완화도 끝나고, 더 이상 미 연준이 정부채권을 구입해 주지 않으면 자칫 채권시장의 가격이 폭락할 수 있고, 금리가 급등할 수도 있다. 누가 채권에 투자를 할까? 이런 사실은 다시 미국 달러화에 영향을 줄 것이고, 아마 올 10월 정도에 개최될 프랑스 G20 정상회의에서는 기축통화 문제가 새로운 주요 이슈로 부상할 수도 있다. 세계 경제는 참 빠르고 다이내믹하게 변화하고 있다.

무대를 옮겨서 한국이다. 막막하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부산저축은행 사태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들었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로 불거진 자산 유동화(securitization)로 불리는 금융기법이 저축은행들의 꽃놀이패로 사용되었다는 점. 다른 저축은행들은? 왜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호들갑들일까? 미리 대응은 못할 문제였나? 국민들의 세금은 만만한 돈인가? 매번 이 같은 대형 사건이 터지면, 국민들의 세금이 '공적자금'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가는데도 한 번도 정확하게 이런 문제를 잡고 넘어가거나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없는 것인지? 국회는 대체 무얼 하고, 분명히 감독을 했을 법한 금융감독원은 왜 존재하고 국민들의 세금으로 된 급여를 타가는 염치가 있는 것인지? 신용평가사들의 역할은 어디에 있는지? 검찰 조사가 끝나야 일을 시작하는 것인지? 도대체 앞과 뒤도 없고, 시작과 끝도 없는 이런 일들을 얼마나 되풀이해야 하는지?

하지만 이런 '도덕적 해이' 문제는 특수 이해자들의 문제만이 아닌 것 같다. 철문이 내려진 바깥에선 자신들의 예금을 인출하려는 예금주들의 아우성을 뒤로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날짜까지 조작해가면 소위 '힘 있는 사람들'의 예금을 인출시켰다는 사실은 조금 과장하자면 한국경제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밥줄' '생명줄' '정신줄' 가운데 가장 놓기 힘든 게 '밥줄'이라 한다. 사장을 비롯한 그 일가친척들이 유령회사(paper company), 즉 특수목적회사(spc)를 차려 놓고, 심하게 말하면 사돈팔촌까지 놀아날 수 있도록 법적, 관습적 환경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던 셈이다.

첫째, 2001년 3월에 1972년 상호신용금고법이 상호저축은행법으로 개정된 후 제2금융권이 저축은행은 지방은행 규모로 성장하도록 규제가 완화되었고, 지방은행과 중앙은행들 역시 제2금융권의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공평'(?)한 기회가 만들어지고, 부동산 붐을 타고 대거 부동산 PF시장에 진출했고, 2007년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부실이 확대되었다는 점. 둘째, 유령회사를 통해 회계장부상 부실누적을 합법적으로 감출 수 있었다는 점, 셋째, 어느 감독기관이나 신용평가사들도 이를 막지 못했다는 점. 넷째 직원들도 그 질기디 질기다는 '밥줄'을 놓을 수 없었다는 점 등이 총체적 부실의 원인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약속을 그 누구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은행 인수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또 다른 금융권의 모습이 과연 '국민의 이해'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매우 걱정되는 부분이다.

곽수종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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