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원학교 '최우수사례' 경주 양동초교

시골학교,도시 부럽잖아요…폐교 위기 딛고 명품부활

이농 현상과 출산율 감소 등으로 학생 수가 줄어 시골 학교들이 폐교 위기에 몰리고 있는 가운데 알찬 프로그램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학교들이 있어 화제다. 경주 양동초교는 전통예절체험 교육과 다양한 방과후 활동, 전자칠판 설치와 개별 노트북 지급 등으로 재학생 수가 늘면서 활기를 찾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이농 현상과 출산율 감소 등으로 학생 수가 줄어 시골 학교들이 폐교 위기에 몰리고 있는 가운데 알찬 프로그램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학교들이 있어 화제다. 경주 양동초교는 전통예절체험 교육과 다양한 방과후 활동, 전자칠판 설치와 개별 노트북 지급 등으로 재학생 수가 늘면서 활기를 찾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도시학교들이 학력 경쟁을 벌이는 동안 시골 학교들은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다. 학생 수가 줄면서 폐교 위기에 몰리는 학교가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시골 학교들은 빛바랜 졸업 앨범 속 추억으로만 남을 처지다.

하지만 부활의 노래를 부르는 시골 학교들도 있다. 현대화된 시설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도시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여기에 자연이 선물한 주변 환경, 지역 전통 문화 학습 등이 매력적으로 비치면서 도시 학생들이 찾아들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전원학교 사업, 경상북도교육청의 작은 학교 가꾸기 사업 등으로 지원이 늘면서 작지만 알찬 '명품 학교'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해 교과부 지정 전원학교 중 최우수 사례로 꼽힌 양동초등학교(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를 찾아 시골 학교의 변화상을 들여다봤다.

◆양동초교,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꿈꾼다

"선생님, 청소 다 했어요. 얼른 시작해요."

17일 찾은 경주 양동마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양동마을은 여주 이씨와 월성 손씨가 터 잡은 조선 시대 대표적 양반촌이다. 이날 오전부터 양동마을 심수정(心水亭)에는 보랏빛 개량 한복을 입은 양동초등학교 여학생 30여 명이 모여 걸레로 대청마루와 기둥을 반질반질하게 닦았다. 따라나선 양동초교 병설 유치원생 꼬마 셋은 한쪽 마루에 나란히 걸터앉아 언니들이 청소를 마치길 얌전히 기다렸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양동문화유산해설사 강미화 씨가 학년별로 앉은 아이들 앞에 나섰다. "큰절부터 배워볼까요? 양손을 이마까지 올리고. 손바닥이 보이면 안 돼요. 이제 왼 무릎부터 꿇고 어깨 높이까지만 고개를 숙이세요. 일어날 때는 오른 무릎부터 세웁니다."

고학년 아이들과 달리 저학년 아이들은 일어나다 '아이쿠' 소리를 내며 비틀거리거나 엉덩방아를 찧고는 멋쩍게 웃기도 했다. 맨 앞자리에 앉은 유치원생 셋은 오른쪽과 왼쪽이 헷갈리는지 엉거주춤하는 바람에 강 씨가 하나하나 챙겨야 했다. 하지만 이들이 앞에 나서 배운 대로 큰절 시범을 보일 때는 다들 '귀엽다' '예쁘다'를 연발하며 큰 박수를 보냈다.

다음은 강 씨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시간. 4학년생 중 하나가 손을 번쩍 들더니 심수정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심수정은 물처럼 마음을 맑게 가지라는 의미예요. 이곳은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셨던 회재 이언적 선생의 동생인 이언괄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은 집이죠."

이어 강 씨가 차를 끓이고 마시는 법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제법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지만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인 모양. 아이들에게 다가오려던 강아지 한 마리가 마루로 올라서지 못해 낑낑대는 걸 본 몇몇 아이들은 '강아지가 너무 예뻐'라고 속삭이며 잠시 한눈을 팔기도 했다. 양동예절체험을 마친 아이들은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산서당에서 남자를 위한 예법을 배운 남학생들도 갈림길에서 만나 함께 움직였다.

마을 입구에 자리한 양동초교 교문으로 들어서자 유서 깊은 마을과 어울리게 기와지붕을 인 단층 교실들이 눈길을 끈다. 2009년 개교 100주년을 맞은 양동초교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교육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때 학생이 줄어 폐교 위기를 맞았던 학교가 교과부와 경북도교육청의 지원 속에 외지 학생들이 전학 오면서 활기를 찾게 된 것.

양동초교의 교육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전통예절교육이다. 이곳에 입학하면 개량 한복을 무료로 받는다. 매주 수요일 사자소학(四字小學) 수업을 받거나 양동예절체험에 참가할 때 입을 옷이다. 우수한 시설은 양동초교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2008년 경북도교육청, 2009년 교과부로부터 각각 작은 학교 가꾸기, 전원학교 사업 지원 대상이 된 뒤 4개 교실을 증축하면서 각 교실마다 전자칠판을 설치했다. 3학년 이상 학생 전원에겐 노트북 컴퓨터가 1대씩 주어진다.

방과후 활동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곳곳에서 초대 공연 요청을 받을 정도로 인기인 풍물놀이를 비롯해 과학 실험, 요가, 댄스 스포츠 등 알찬 내용으로 꾸며 놓았다. 한동대학교와 연계한 영어체험 캠프도 운영 중이다.

양동마을 출신인 이동준(6년) 군은 내년이면 정든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친구들이 점점 늘어나고 교실도 깔끔해져 정말 좋아요. 풍물놀이 활동도 신나고요. 벌써 6학년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나요."

여기에 소규모 학교 특유의 끈끈한 정은 학생들을 웃음 짓게 만든다. 4학년 박가은, 박채은 양은 항상 꼭 붙어다니는 단짝 친구다. 포항이 집인 가은이는 유치원 때부터 양동초교에 다녔다. "작년 2학기 때 포항에서 채은이가 전학 와서 너무 좋아요. 그 전엔 우리 학년에 여자가 저 혼자였거든요." 채은이도 학교 생활이 즐겁다. "선생님이 정말 친절하세요. 예전 학교와 달리 아이들과도 모두 친해요. 저학년 동생들도 귀엽고요."

학부모 만족도도 높다. 채은이 어머니 공은주(37) 씨는 학교 생활이 즐겁다는 외동딸을 보면 전학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 사람들에게 적극 전학을 권유할 정도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생활에 찌들어 있던 아이를 본 뒤 인터넷을 뒤져 찾은 학교가 이곳. 미리 학교를 둘러보러 왔을 때 낯선 자신에게 학생들이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본 뒤 전학 결정을 내렸다. "바른 인성을 가진 아이로 키우고 싶어 고민 끝에 이곳을 찾았죠. 채은이 얼굴에 그늘이 사라진 걸 보면 저도 즐거워요. 특히 예절체험과 양동숲길 걷기가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입니다."

양동초교 생활이 입소문을 타면서 재학생 수는 점차 늘고 있다. 2001년 50명에 불과하던 학생 수는 현재 85명으로 불었다. 외지에서 몰려든 학생들 덕분이다. 1학년 16명 중 10명, 4학년 12명 중 7명, 6학년 13명 중 8명이 양동마을 밖에서 찾아온 아이들이다. 학생들의 통학을 위해 양동초교는 동창회에서 매년 500여만원을 지원받아 통학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양동초교 권용규 교사는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아이들이 자연과 호흡하면서 맑고 건강하게 크는 모습을 보면 교사들 역시 즐겁다"고 말했다.

◆전원학교, 변화가 학교를 살린다

경북 지역 초교 입학생 수는 해마다 줄고 있다. 2008년 18만7천309명이던 초교 새내기 숫자는 꾸준히 감소, 2011년에는 15만6천483명에 그치고 있다. 초교 숫자 또한 2008년 497개교에서 올해는 491개교로 줄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학생들이 모여드는 학교들이 있어 더욱 눈에 띄는 것이다.

양동초교와 함께 지난해 도내에서 전원학교 최우수 사례로 꼽힌 봉현초교(영주시 봉현면 대촌리)는 인성과 학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잘 잡은 경우다. 2006년 이곳 재학생은 34명에 불과해 폐교 위기에 몰려 있었다. 하지만 전 학년을 대상으로 원어민 생활영어 교육을 실시하고 2008년 경북에서 처음으로 학교 안에 마을 도서관을 세우는 등 학교 살리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전원학교로 지정된 이듬해엔 3학년 이상에게 개별 노트북 컴퓨터를 지급했다. 또 학교 둘레에 약 100여m 규모의 탐방수로를 만들어 야생화, 물레방아, 정자 등으로 꾸며 자연 체험장으로 활용 중이다. 이 덕분에 풍기, 충북 단양 등 인근 지역에서 학생들이 찾아왔고 올해 재학생 수는 76명으로 늘었다.

봉현초교 임세빈 교장은 "인성 교육뿐 아니라 2010학년도 국가수준성취도 평가 결과 우수학생 비율이 38%에 달하고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없을 정도로 교과 공부에도 신경쓰고 있다"며 "지속적인 지원이 이뤄진다면 시골 학교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 외에도 영주 문수초교, 영천 중앙초교 화남분교, 경주 사방초교, 칠곡 낙산초교 등이 도교육청의 지원 덕분에 '찾아가는 개인교사제' '계절 방학학교' 운영 등으로 학생 수가 조금씩 늘면서 활로를 찾고 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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