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미술관 개관-"문화계 10년 체증 뚫렸다"

대구시민이 10년 이상 기다려온 대구미술관이 26일 드디어 문을 연다.

대구미술관은 개관을 맞아 특별전으로 '기(氣)가 차다' '이강소'전, '리차드 롱' 전시를 선보인다.

1, 2층의 가장 큰 규모의 1, 2전시실을 가득 메운 전시는 '기(氣)가 차다'전. 우리 현대미술의 특징이 서양 미술과는 어떤 다른 흐름으로 발전해왔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다.

'기가 차다'전시는 1전시실의 '의(意)를 그리다'와 2전시실의 '적(跡)을 보다'전으로 나뉜다.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만 1전시실의 전시는 개념이 강조된 작품을, 2전시실의 전시는 형상을 통해 본질을 추구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첫 번째 섹션 '의를 그리다'는 동양 예술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예술 그 자체로서의 결과물이 아니라 바로 도(道)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점을 주목해서 구성된 전시다. 이 섹션에서는 특히 추사 김정희에 주목한다. 자연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수행적 태도로 작품에 임했던 추사의 사의(寫意)적 전통은 민영익, 정학교, 석재 서병오를 거치며 현대미술로까지 이어진다.

이는 작가들의 끊임없는 수행적인 태도로 나타나기도 하고 문인화적 전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신문에 수많은 연필과 볼펜 선으로 지우면서 동시에 흑연과 잉크로 채우는 최병소, 마대 천 바깥에서 물감을 밀어내는 작품을 선보이는 하종현, 수묵화 같은 느낌을 주며 묘한 번짐을 보여주는 윤형근, 갈필이나 손으로 그려낸 강한 먹색과 필력이 주는 리듬감을 느끼게 하는 김호득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건용은 커다란 나무를 묻혀 있던 장소의 흙과 함께 전시장으로 옮겨 놓아 장소성을 강조한다. 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서양 화가로는 미니멀리즘 작가 도날드 저드의 작품이 전시된다.

두 번째 섹션 '적을 보다'전은 구체적인 형상을 보여주는 작품을 통해 내면에 축적된 본질을 바라보는 우리 미감의 특징을 요약해 보여준다. 김창열의 물방울, 지석철의 쿠션, 고영훈의 돌과 책, 이승조의 파이프 등 음영을 두드러지게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김아타의 사진 속에는 대도시의 건축물과 그 사이 텅 빈 도로, 그리고 그 위 뿌연 공기층들을 사진에 담아 불교의 공(空)철학을 연상시킨다. 정병국은 흔들리며 휘청이는 사람의 뒷모습을 담았다. 이들 작가들은 대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본질을 추구한다.

2전시실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 수염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실은 형상 이면의 강직함과 시대적 비애감까지도 느껴진다. 이는 형상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표현하고자 한 현대 작가들의 미학적 뿌리로 보인다. 국보 240호로, 이번 전시를 위해 대구미술관이 어렵게 빌려왔다.

대구미술관이 야심 차게 준비한 어미홀의 첫 전시로는 이강소의 설치작품 '허(虛) emptiness 11-Ⅰ-1'이 놓인다. 이강소는 한국현대미술 운동의 최전방에서 활동하면서 1974년부터 1979년까지 한국현대미술운동의 기폭제로 역할을 한 '대구현대미술제'의 주축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설치 작품은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과거를 상징하는 분황사의 지주석을 배치했다. 일상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계단, 난간 등의 구조물의 단순한 형태적 본질을 나무로 형상화했으며 미래의 시간성을 나타내기 위해 일부 면을 시커멓게 산화시키기도 했다. 남아있는 '현재'는 관람객이 채우게 된다. 작품 사이를 오가는 관람객이 직접 작품을 완성하는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이강소는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작품을 제작했으며 이 모든 과정은 다큐멘터리로 담아 또 다른 작품으로 남게 된다.

한편 3전시실에는 리차드 롱의 전시가 9월 25일까지 열린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대지미술가 리처드 롱은 인간의 본질적인 행위로서 '걷기'를 예술의 방법으로 제시한다. 그의 작품은 신체적 행위로서의 '걷기'와 그것의 '흔적', 그리고 결과물의 '기록'이라는 세 단계의 작업 과정으로 함축된다. 이번 전시에는 작품 '한강 서클'과 '경복궁 서클'이 전시된다. 이는 작가가 예전에 한국에서 한강변과 경복궁을 걸으며 사유한 기억을 바탕으로 작업된 것으로, 매끄럽고 둥근 강돌과 각지고 거친 표면의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3전시실의 전망과 더불어 자연을 전시실 안으로 끌어들였다.

대구미술관 개관식은 26일 오전 10시 대구미술관 야외무대에서 진행되며 프로그램 식전 공연으로 대구시립교향악단이 공연하며 식후 공연으로는 계명대 쇼팽음악원의 공연이 예정돼 있다. 053)790-3030.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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