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자체가 거대한 놀이터 같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철제 대문 앞에 말 한 마리가 엉덩이를 쑥 내밀고 서 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기도 한다.
전시장 한가운데는 거대한 주사위가 열려진 채로 배치돼 있다. 열린 주사위 사이로 사과들이 쏟아져 나온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조각가 황지선은 놀이(Play)를 창작의 실마리로 삼고 있다. 말이 꼬리를 흔들고 있는, 어쩌면 에로틱할지도 모르는 장면은 어릴 적 종종 놀이 삼아 하던 '말뚝박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아이들의 등에 올라타 말뚝박기를 하던 장면과 말의 엉덩이는 묘하게 오버랩되면서 미소를 자아낸다.
거대한 슈트 케이스도 전시장에 놓여 있다. 슈트 케이스는 반쯤 열려 있는데, 그 내부는 검은 거울이 채워져 있다. 어릴 적 야단맞거나 왠지 서글퍼질 때, 혹은 놀이 삼아 옷장 속에 숨어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장 바닥에는 '사방치기'의 장면이 연출돼 있다. 사방치기 하며 놀던 땅의 구획을 조각으로 나누어 번호를 적었다. 이처럼 작가는 여러 가지 놀이를 테마로 해서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미감을 선사한다. 이를 두고 윤규홍 아트디렉터는 "예술의 의미화 과정을 놀이라는 은유를 통해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주사위 놀이, 말뚝박기, 사방치기, 땅따먹기 등은 그 규칙을 모르면 끼어들 수 없는 놀이다. 이처럼 관계와 역할을 이해해야 하는 놀이를 통해 예술이 비로소 의미로 완성되는 과정을 역추적해 보여준다. 작가의 작품에선 유독 사과가 눈길을 끈다. 사과는 거대한 주사위에서 쏟아져나오기도 하고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도 하다. 윤 아트 디렉터는 "사과는 우연과 필연을 가로질러 돌이킬 수 없는 인과관계의 비가역성을 표현한다"고 말한다.
에덴동산의 선악과일 수도 있고 희랍신화에 등장하는 여신들의 황금 사과처럼 욕망의 매개체일 수도 있다. 또 완전할 수 없는 생명의 비유이기도 하고 손상된 현대적 자아의 반영이기도 하다.
작가는 관람객의 어린 시절 놀이의 기억을 호출한다. 그래서 깊은 의미를 몰라도 전시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미덕이다. 누구나 어릴 적 즐기던 놀이 하나쯤은 있었을 테니 말이다. 갤러리분도에서 6월 11일까지 전시된다. 053)426-5615.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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