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은 공산당과 빈곤, 부정부패를 우리의 3대 공적(公敵)으로 지목하였다. 그 가운데 부정부패 척결에 대해서는 그 의지가 얼마나 추상같았던가를 보여주는 비화가 있다. 보사부장관을 지낸 송정숙(宋貞淑) 씨가 '박정희 대통령 회보' 제16호(2008. 7. 1)에 기고한 글인데, 그대로 옮겨 적는다.
"박정희 정권에서 오래 총리를 지낸 J씨 시대의 이야기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총리를 제의하면서 '절대로 지켜야 할 세 가지 약속'을 받아냈다. 첫째, 돈을 먹지 말 것. 둘째, 군 인사(軍人事)에 개입하지 말 것. 셋째, 특정지역의 결속 음모나 기도에 합류하지 말 것.
첫째에 대해서는 '임자가 돈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하라'는 것이었다. J씨는 이 세 가지 약속을 잘 지켰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일로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그것을 반드시 들어주었다. 그렇게 잘 지내다가 총리직이 끝날 무렵에 이르러 본인도 모르게 엉겁결에 어떤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것은 한 착실하고 군인다운 군인의 인사에 관계된 일이었다. 그 군인은 청렴하고 능력이 있어서 박정희 대통령이 아끼는 영관급 군인이었다. 그런 그가 별을 다는 승진을 앞두고 어떤 모함에 휘말렸다. 투서를 당해서 철저한 조사를 받았고, 마침내는 무혐의로 밝혀졌다. 총리도, 대통령도 그 결과를 크게 반겼다. 아끼고 신뢰하던 부하가 끝내 실망스런 일에서 벗어난 것은 아주 대견한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곧 승진 심사가 있었다. 불의의 일로 시련을 겪은 그 군인도 인사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겪은 개인적 시련이 안 됐다 싶어 그가 별을 달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대통령도 같은 정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일로 청와대에 보고를 하기 위해 들어갔던 총리가 끝머리에, 그 군인에게 별을 달아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지나는 말처럼 했다고 한다.
무심코 이야기를 하다가 총리는 '아차!' 하는 느낌이 스쳐갔다. 무엇인가 대통령의 얼굴에 차가운 기운이 스쳐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얼른 말을 주워 담고 물러나왔다. 그런데 바로 그 이튿날 아침, 총리는 그 승진 대상이었던 군인이 밤사이에 옷을 벗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총리로 임명될 당시 한 약속의 두 번째를 어긴 것이 이유였음을 알았다. 그것이 J씨에게는 일생일대의 회한이 되었다.
그가 그 말만 하지 않았으면 당연히 별을 달았을 사랑하는 부하 한 사람의 불행이 너무 가슴 아팠다. 설령 그렇기로서니 그렇게 가혹할 것은 없지 않은가 하는 원망도 들었지만,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약속' 가운데 하나를 어긴 결과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얼마 전 국제적인 부패 감시를 위한 민간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CPI)의 발표가 있었다. 국가별 부패 인식지수를 발표한 것인데,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보다 0.1점이 떨어진 5.4점을 받아 조사 대상 178개국 가운데 39위에 머물렀다. 우리가 받은 5.4점은 '절대 부패'를 겨우 벗어난 수준이다.
신문을 통해 부정부패에 관한 기사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 "한국인들은 언제나 뇌물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법을 어기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한국인들의 문화와 태도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불법 취업을 단속하러 나온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잘 처리해 주겠다'고 하자, 사장이 그 공무원에게 공개된 장소에서 돈 봉투를 건네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주한 외국인들을 상대로 조사한 자료이다.
국민들은 고위 공직자들의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면서 크게 실망하고 있다. 하나같이 부동산 투기, 탈세, 병역기피 또는 면탈, 터무니없는 거액의 수입 같은 갖가지 의혹에 연루된 데 대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실제 일부 공직자들은 너무 잘사는 것 같다. 더러는 그처럼 잘사는 것을 당연시하는 풍조가 있는 것 같다. 잘산다는 것, 그 자체는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공직자들이 잘산다는 데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여지가 있다. 그들의 소득이 뻔한데, 어떻게 그리 잘살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기야 그 가운데는 상속에 의한 재산, 부부 맞벌이, 가족의 부업 등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도 없지 않을 테지만.
국민들은 부정'부패'부조리가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한다. 그것이 인간 사회의 이상이고 보면, 그 같은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과감한 결단과 실천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고위 공직자와 사회 지도층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하게 다스려야 할 것이다.
문화사랑방 허허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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