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군 금천면 선암서원. 아름드리 소나무에 둘러싸여 고고한 자태를 뿜어낸다. 소요당 지붕 위에 핀 '와송'은 수백 년 동안 한결같이 이곳을 지켜온 보물이다. 선암서원의 뒤태는 비경이다. 감탄사가 절로 난다. 운문댐과 동창천의 맑은 물, 그리고 굽이쳐 흐르는 용머리의 선암(仙巖), 그 아름다움의 끝자락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선암서원에서 하룻밤
세계 최고 권위의 여행 가이드 프랑스의 '미슐랭 가이드'가 최근 한국의 구석구석을 둘러본 후 대표 명소들을 소개했다. 미슐랭이 발견한 '한국의 매력'은 전통문화였다. 특히 '한옥체험'을 추천했다.
'고택 숙박체험'은 독특한 여행이다. 경북유형문화재 제79호인 '선암서원'은 지난해 '전통고택 숙박 체험장'으로 문을 열었다. 운문사 가는 길목에 있어 대구에서 자동차로 1시간 남짓한 거리다. 선암서원에 들어서니 국악소리가 울려 퍼진다. 청량한 국악소리는 한옥과 멋지게 어울린다. 온누리국악단 구상본 단장의 맏딸 승희(25) 씨가 장구채를 잡았다. 대금 연주는 박현진(25) 씨, 가야금은 임정아(24) 씨, 배주민(25) 씨는 아쟁을 연주한다.
선암서원은 동창천이 굽이쳐 흐르는 선암에 자리 잡고 있다. 대문채와 안채, 사랑채, 행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랑채 앞에 토담으로 내외를 구분한 것이 이채롭다. 뒤편은 서당인 소요당이 있다. 서당 대문을 나서면 오솔길이 운치를 더해준다. 소요당 뒤쪽에 서 있는 장판각에는 배가예부운략판목과 해동소 소학판목 등 보물과 문화재가 있다. 관리상의 문제로 2005년부터 안동국학진흥원에서 보관하고 있다.
◆소요당의 매력
서당인 '소요당'의 마루 위에 걸터앉았다. 고즈넉하다. 시간이 정지한 느낌이다. 소요당에서 차를 마시며 박향숙 관장으로부터 선암서원의 역사를 듣는다. 다탁 위 야생화 한 송이가 운치를 더해준다. 수백 년은 됨직한 배롱나무 두 그루와 담장 너머 소나무의 풍광이 편안하다. 일상에 지친 나그네에게 안식을 선사한다. 소요당의 천장은 예술이다.
이토록 화려한 한옥은 보물로 지정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요당 마루에 누워 얼핏 잠이 들었던가? 책 보자기를 든 조선시대 어린 학동이 소요당의 대문으로 들어선다. 흰색 광목옷을 입은 학동은 친구들과 어울려 낭랑하게 글을 읽는다. 400년 전 나였다. 그 꿈을 깨고 싶지 않아 오랫동안 마룻바닥에 누워 있었다.
◆득월정에 묵다
선암서원에 해거름이 시작됐다. 세상이 나지막하게 내려앉는 느낌이다. 박 관장이 안채에 군불을 땐다. 저녁에 도착하는 서울 손님들에게 뜨끈뜨끈한 온돌방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장작 태우는 연기냄새가 서당에 가득 퍼진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고향의 냄새다. 사랑채는 득월정(得月亭)이다. 이곳에서 달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선암서원에서 하룻밤을 묵는다는 소식에 계명대 신문방송학과 구교태 교수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요즘 보기 드물게 젊은 풍류객인데다 감성이 풍부하다. 초행길에다 밤이라 고생했을 법도 한데 그는 도착하자마자 선암서원의 풍광에 감동했다.
경북 향토사연구협의회 회장이자 경북문화관광해설사 회장인 박윤재(58) 씨 부부도 동참했다. 풍류객들이 득월정 마루에 앉았으니 조용할 리가 없다. 선암서원에 대한 박 회장의 해설이 끝없이 이어진다. 보름이라 휘영청 달이 밝다. 선암서원의 마당에 가득한 달빛을 보니 득월정이란 이름의 유래를 이해하게 된다. 고즈넉한 선암서원에 개구리 소리가 울려 퍼진다.
선암서원의 아침은 박 관장의 마당 비질 소리로부터 시작된다. 박 관장이 득월정까지 아침상을 내왔다. 유기그릇에다 잡곡밥, 쑥국이다.
◆숙박예약
숙박체험은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문화재여서 취사는 불가능하다. 저녁식사는 미리 주문하면 가능하다. 숙박은 안채(방 1칸·대청마루)는 4인 기준으로 8만원, 사랑채(방 2칸·대청마루 2칸)는 7명 기준으로 15만원, 행랑채는 방 1칸(2인 기준) 5만원, 방 2칸(5인 기준) 10만원으로 각각 대청마루가 딸렸다. 아침식사는 1인당 1만원. 예약은 박향숙 관장(010-5345-8445)에게 하면 된다.
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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