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하 ㈜코스콤 대표이사 사장(54)을 따라다니던 별명은 '우주화'였다. 혹은 어린 시절 우주에서 온 외계인으로 한두 번 놀림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우리 사회에서 '세계화'라는 용어가 유행하자 '우주화'는 세계화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지난 1월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에서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금융 IT솔루션 기업'인 코스콤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긴 우 대표는 해외시장 진출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한국거래소의 자회사인 코스콤은 거래소가 자본을 투입, 외국과 합작법인을 만들어 해외거래소를 만들면 해외자본시장을 운용할 시스템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과 말레이시아에 이어 올 초 라오스 증권거래소를 개장시켰고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와 페루 등 남미시장까지 개척하고 있다. "기업이 세계화를 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국거래소와의 상생협력관계를 바탕으로 해외 진출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코스콤이 이처럼 해외거래소 진출에 강점을 보이고 있는 것은 미국과 유럽 등의 거대 자본시장과 달리 우리의 거래소 시스템은 개발도상국 모델로서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같은 '세계화'는 우 대표가 주제네바 대표부 참사관 등으로 10여 년 동안 해외근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이기도 하다. 행정고시 22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무부와 재경원, 재경부 등에서 30년 동안 공직생활을 한 그는 정통 경제관료다. 그는 재무부 국제기구과장 등을 역임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심판관으로 일하면서 WTO 관세평가위원장(2006년)을 역임하는 등 국제무역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분쟁심판관은 2002년 이후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다. 재무부에서 직원들이 역대 국제기구과장을 평가할 때 그는 '논리맨'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국제기구에서는 국제법상 명확한 근거나 논리를 갖추지 않고서는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없는데 우 대표가 꼼짝달싹할 수 없는 근거를 찾아내 논리적인 해답을 제시하곤 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국제무역전문가인 그가 공직생활에서 가장 보람을 느낀 시절은 국무총리실에서 산업심의관으로 일하면서 각 부처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갈등을 빚던 정책들을 조정하던 때였다.
"부처 간에 정책이 부딪칠 때는 조정을 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경차와 관련, 환경부와 지식경제부가 갈등을 빚고 있을 때 적절한 해결방안을 내놓고 양측을 설득시키는 것이 국무조정실의 역할입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갈등을 조정해 국가정책에 기여할 수 있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당시 그는 ▷외국인 산업인력에 대한 고용허가제도 도입 ▷원전수거물 페기장 건립 추진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국내외 종합대책 수립 ▷정부혁신과 지방분권 기획 등의 굵직굵직한 정책들을 조정해서 내놓는 데 크게 일조했다.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으로 있을 때는 국방 분야에서 경제마인드를 도입, 국방정책에 대한 혁신프로세스를 마련하기도 했다. 경북도에 파견 갔을 때는 중앙부처와 경북도 간 인사교류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
그는 "공직에 있든 여기(코스콤)에 있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관심사항이 공동의 이슈에서 기업으로 넘어왔지만 기업이라고 해서 이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하는 만큼 우리나라 자본시장의 발전을 추구하면서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공직에서 채택한 제도들이 민간 부문과 비교해볼 때 경쟁력 있는 것들도 많이 있어 이러한 것들이 민간 영역에서도 잘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의욕을 보였다.
경북 의성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는 대구로 유학을 가서 대봉초, 사대부중을 거쳐 대구상고, 성균관대 경제학과, 서울대 대학원 석사 및 미국 미시간대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공부를 썩 잘했던 그가 경북고로 진학하지 않고 대구상고로 간 것은 집안사정 때문이었다. 친구들처럼 판'검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부친은 대학에 가지 않고 은행원이 돼서 돈을 벌기를 원했고 결국 그는 고집을 꺾고 상고에 진학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대구상고에 수석으로 합격했고 뉴스를 본 만화방 주인이 "너도 고등학교에 (수석으로) 합격했구나"라며 대견해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만화에 빠져 있어서 학교를 마치면 만화방부터 갔을 정도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곧바로 한국은행에 입행, 부친의 희망처럼 은행원의 길을 걸을 뻔하기도 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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