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어느 화가의 삶

지난 4월이 끝나갈 무렵, 국립경주박물관 직원이 메일을 보내왔다. 부친이 대구에서 화가로 활동하시다 현세와 작별하셨고, 그 해에 운명적인지 자신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직원이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직업에 운명적 이끌림이 있었다고 생각하였는데, 좋은 기회가 있어 부친의 유작 전시를 열게 되었노라 전하였다. 첨부된 초청장의 이미지는 싸움닭 두 마리가 치고받는 검푸른 색채의 강렬한 그림이었다.

한 아들의 부친에 대한 애틋함이 묻어나는 초청의 글이었으나, 사실 나는 그와 그의 부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와 서너 번 만난 것이 전부였고, 하는 일도 조금 다르며 함께 근무한 적도 없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메일에 첨부된 '투계'라는 제목의 그림은 무언가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단순하나 굵은 붓놀림과 실체와 동떨어진 극단적인 색채는 무언가에 응어리진 화가의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개막식에 꼭 참석하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전시는 수성아트피아 개관 4주년 기념의 '고 정일(丁逸) 특별 회고전'이었으며, 5월 3일에 문을 열었고 며칠 전인 22일에 막을 내렸다. 개막식에서 만난 그림은 무척 독특하였다. 투계 이외에 권투와 낚시 그리고 무언가로부터 받은 위협과 두려움이 그림에서 큰 흐름을 이루고 있었다. 풍경과 정물은 다소 격한 주제에 묻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에 더해 시간차를 두고 그린 여러 점의 자화상도 있었다. 투계와 권투는 일상에서 마음껏 외치거나 펼칠 수 없는 화가의 억눌린 속내를 보여 주는 듯하고, 낚시는 치열한 현실에서 잠시 도피한 화가의 일탈이라 읽혀졌다. 다소 많은 자화상은 자아를 되새김질하여 스스로 완결을 찾으려는 격한 몸부림이라 느껴졌다. 밝고 어두운 극단적인 색채를 조합한 굵은 붓놀림에는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여 있었다. 또한 소심하고 감성적인 영혼을 마구 할퀸 칼날이 그림 속에 숨겨져 있는 듯하였다. 한마디로 표현하기에 참 그렇지만 그림만 보았을 때, 솔직한 첫 느낌은 아웃사이드의 비애였다.

감상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화가의 이력을 읽었다. 그랬다. 화가의 이력과 그림은 완벽히 이어져 있었다. 화가 정일(1940~2005)은 만주에서 태어나 북녘을 거쳐 한국전쟁 때 대구에 내려와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홍익대학교에 진학하였으나 가세가 기울어 바로 자퇴하였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였다. 이후 짧게 미술교사를 하였으나 거의 일생을 전업 작가로 살았다. 두 차례나 겪은 참혹한 전쟁과 성인 이후에 닥친 곤궁함이 눈앞에 선하다. 더불어 항상 따라붙는 미완의 자괴감도 보인다. 이 모두가 자주 술을 권하였을 것이고, 가족과 자신에 대한 미안함이 응어리로 남아 화가의 심상과 육신을 갉아먹었을 것이다.

이 전시에서 앞선 시절의 아버지들이 보였다면 조금 과장된 표현일까? 전쟁과 빈곤이 일상을 짓누르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삶이나 배움이나 그 어디에서 조금 또는 많이 부족할 수밖에 없던 시절을 살았던 이들은 자괴감에 몸서리쳤다. 질펀한 선술집이 아니고는 자신을 표현할 수 없었던 아버지들이 있었다. 밤이면 밤마다 터져 울리는 고함과 부서지는 굉음은 여느 도시의 허름한 뒷골목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그러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약간 알겠다. 그들에게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럼에도 현실은 그다지 녹록하지 않았다는 것을.

화가 정일을 만나고 보니 불현듯 떠오르는 한 분이 계시다. 경주에서 활동한 고 박노견 화가이다. 어릴 적 기억 속에 이 어른은 항상 경주 계림의 고목들 사이에서 작품을 하셨다. 그런데 두 화가의 이력은 너무나 닮았다. 같은 대학을 중퇴한 것과 척박한 환경에서 작업을 이어간 것도 닮았다. 언젠가 고 박노견의 유작 전시가 열린다면 찾아보고 싶다. 기름진 기성의 두꺼운 벽이 좀처럼 기회를 열어주지 않을지 몰라도 희망은 가져본다. 왜냐하면 고 정일의 그림 중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유난히 빛나는 '나의 아들'이라는 작은 작품이다. 화가는 소심하게 손을 내밀어 말을 한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라고. 아버지의 온기가 그대로 묻어난다. 고 박노견의 유작에도 이런 것이 있을 듯하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감동을 주는 모든 것은 예술일 것이다. 그들에게도 희망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함순섭(국립대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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