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영재의 행복칼럼] 서울말

서울의 중류층 사람들이 쓰는 말이 표준말이라고 한다. 그럼 실제로 서울의 중류층쯤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자. "요즘 시장의 경기가 영 좋지 않아요. 물건이 팔리지 않으니 우리들은 빗(빚)을 내어 장사를 하지요"라고 시장 상인이 말한다. "저 꼿(꽃)이 모양은 예뻐도 향기가 없으니 빗(빛)이 나지 않아요"라고 플라워 디자이너가 말한다. 일기예보를 하는 리포터는 "내일 서울의 새벽 기온은 일또(일도)로 꽤 추운 날씨가 될 것입니다"라고 한다. 가끔 지도층에 있는 교수들이 방송에 나와서 쓰는 말도 비표준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영화 '젊은 사자들'에 출연한 몽고메리 크리프는 정말 매력적인 배우지요"라고 하는데 그 사람은 아프리카 사자와 심부름꾼 사자를 구별 못 하고 발음을 한다. 장음과 단음도 구별 못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과연 서울의 중류층이 쓰는 말이 계속 표준말이 돼도 될까? 서울 사람들은 경상도 사람들이 엉터리 발음을 한다며 놀린다. "리가 그 많은 적들과 싸워 성리(승리)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라던가 "저 논은 아주 기름져서 살(쌀)이 정말 많이 생산돼요"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울 사람 자신들은 "야! 너희들 이제 늦었으니 발 닦고(발 씻고) 자"라고 말하고, "요즘 사과는 농약이 걱정돼 가급적 껍질을 벗겨(깎아) 먹어야 돼"라고 한다.

정신분열증 환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외모가 더럽고 쌍스런 소리를 하며 물건을 던지며 사람이나 두들겨 패는 증상을 떠올린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러하지 않다. 그런 상식 이하의 짓을 하는 환자는 원래가 쌍놈이거나 아니면 인격적인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지 그런 못된 행동은 정신병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정신병 환자들은 자신이 병에 걸린 줄 모르거나 현실감이 없어 입원 자체를 억울하게 생각하고 짜증을 많이 낸다. 하지만 점잖은 사람들은 그렇더라도 큰소리로 항의를 하거나 화를 낼지언정 욕을 하고 기물을 부수거나 그런 시시한 짓은 하지 않는다. 정신분열증의 가장 핵심적인 증상은 말을 횡설수설하는 것이다. 물음에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자신이 말하면서 끝을 마무리짓지 못하거나 하는 증상을 보이는 것이 주요 증상이다. 이런 현상은 사고가 지리멸렬해진 결과 나타나는 증상이다.

오늘날 서울 중류층 사람들은 말을 제멋대로 한다. 자기 마누라를 '내 부인'이라고도 하고 자신의 아버지를 '우리 아버님'이라고도 한다. 영어는 철자 하나 틀려도 '무식한 놈, 죽일 놈'이 되지만 우리말은 대충 해도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않는다. 서울 사람들이 표준말을 못하는 것은 서울말의 진화 과정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혹시 집단 정신분열증 증상은 아닌지 소름 끼치는 공상을 해 볼 때가 있다. 말은 정신 건강의 표현이므로 말 잘못해서 나 같은 돌팔이 정신과의사에게 '미친 놈' 취급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될 것이다.

권영재 보람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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