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창석의 뉴스 갈라보기] '이웃사랑'의 감동을 넘어서

엄창석

누구나 그렇겠지만 신문을 볼 때 후다닥 읽어보는 기사와 느긋하게 살피는 기사가 따로 있다. 바쁜 출근 시간대나 식사 중에는 제목만 봐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정치나 스포츠면을 훑게 되고 여유가 있으면 의상 등의 트렌드를 다룬 기사나 책, 영화, 미술 같은 정독을 요구하는 문화면을 뒤적이게 된다.

내 경우에는 소파에 느긋이 앉아 매일신문을 볼 때는 언제부턴지 눈이 '이웃 사랑' 난에 가 있곤 하였다. 매주 한 차례만 게재되므로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여유 있는 시간에 들여다보는 난이 동일하다는 것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만큼 흥미롭고 유익하단 것이겠다.

 '이웃 사랑'은 대부분 나이 들고 병든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아픈 사연을 기록하는 난이다. 2002년 11월에 처음 시작되었다고 하니까 일찌감치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왔던 것인데, 나만 몰랐던 것 같다.

물론 이와 유사한 기사나 TV 프로그램이 더러 있었다. 야단스럽게 병자에게 플래시를 던지거나, 각색하여 시청자의 누선을 자극시키면서 많은 기부금을 걷어내는 개가를 올린다. '이웃 사랑'은 그렇지 않다. 이야기는 과장됨 없이 진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자로 전달되는 것이어서 어떤 기막힌 사연이 담긴 문장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도록 한다. 세상에 이토록 다양한 난치병의 종류와 곡절 많은 가난이 있을 줄이야! 소설을 쓰는 나도 혀를 내두른다.

2010년을 전후로 한국문학을 휩쓸고 있는 한 주체는 '신프롤레타리아'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거의 궁핍한 청년들이다. 아시는바,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노동력 외에 다른 수단을 갖지 못하는 노동자 혹은 무산계급을 가리킨다. 이에 마르크스는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가와 일의 대가를 충분히 받지 못하는 노동자 사이에서는 필연적으로 계급적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무수한 젊은 주체들은 일거리 자체가 없어서 노동자로도 호명을 받을 수 없다. 많은 인력이 대학을 졸업했지만 '알바'로 시간제 업무에나 종사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계급 용어인 '신프롤레타리아'로 지칭되는 까닭은, 이들이 자본의 관계에서 출현했음에도, 자본의 외부에 위치한 탓에 존재론적으로는 계급이 아니지만, 정치적인 의식을 지니고 있으므로 계급적으로 활동한다는 점 때문이다.

보다 더, 이들이 '신프롤레타리아'로 지칭되는 이유는 현재의 사회 구조가 앞으로 더 개선되기 힘들다는 암울한 전망 때문이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 체제, 각종 시장의 양극화, 지방의 열악한 경제 상황 등은 현재의 처지를 고착시키거나 더 나쁜 상황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나는 다시 '이웃사랑'을 펼치고 들여다본다. 스물다섯 살 된 뇌병변장애를 가진 젊은이의 사연을 꼼꼼히 읽는다. 몸이 불편해 낙하사고가 일어났고, 부러진 척추가 다리뼈와 어긋나지 않도록 양쪽 다리에 철심을 박았다. 더욱이 수술 후유증으로 온몸에 세균이 퍼지는 패혈증을 앓게 되었고, 그의 어머니는 아파트 청소원이다. 지난주 기사를 회상한다. 그 기사는 더 특이하다. 51세 된 설(舌)암 환자의 이야기다. 수술을 받기 위해 입 안의 치아는 물론이고 잇몸까지 들어냈다. "멸치를 먹다가 잇몸에 찔려서 큰일 날 뻔했어요. 이제 멸치는 입에도 안 댄다니까요" 하는 대목에서 웃고 만다. 그는 하나뿐인 딸과 함께 살지만, 딸(21세) 역시 보편적인 한국의 젊은이처럼 하루 9시간씩 일하고 5만 원을 손에 쥐는 '일용직'이니까 아버지의 병원비를 거들 처지도 못 된다.

아픈 사연들은 현실을 생생히 기록한 것이지만, 느닷없이 나에게는 우리 사회에 대한 하나의 은유(隱喩)처럼 다가온다. 뇌병변장애나 설암이 왠지 우리의 젊은이나 사정이 힘든 노인들의 모습처럼 느껴지는, 감정의 과장을 경험한다.

사실 '이웃사랑'은 우리 주변의 아픈 사연을 보도하면서 독자의 성금을 기대하는 기획 기사이다. 매주 빠짐없이 천 명이 넘는 독자들이 매일신문에 성금을 기탁하는 놀라운 사랑을 보여준다. 그러나 성금을 내는 독자들은 진정 바랄 것이다. 자신들의 사랑을 넘어서서 이제는 구조적으로, 우리 정부나 기업이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데 힘을 쏟기를 애절히 바라는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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