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욕심 버렸더니 평생 잊지 못할 일…" 사회인야구서 '노히트노런' 표병관씨

간경화를 극복하고 사회인야구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표병관 씨.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사진 아래) 표병관 씨의 노히트노런 기록지. 대구경북사회인야구연합회 제공
간경화를 극복하고 사회인야구 경기에서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표병관 씨.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사진 아래) 표병관 씨의 노히트노런 기록지. 대구경북사회인야구연합회 제공

"사회인야구에서 노히트노런했다니 아무도 믿지 않았어요. 말도 안 된다며 거짓말쟁이가 돼버렸어요."

사회인야구팀 로타리언스(로타리 3700지구 통일로타리 회원 주축으로 만든 야구팀) 투수 표병관(51) 씨는 이달 21일 평생 잊지 못할 사고(?)를 쳤다. 마운드에서 '노히트노런'(무안타 무실점 승리 경기)을 달성한 것이다. 지난해 가을 창단해 올해 사회인야구리그에 처녀 출전한 로타리언스는 그의 눈부신 투구에 힘입어 창단 후 첫 승을 거뒀다.

팀의 최고령 선수인 표 씨는 이날 4사구 3개만 내주며 대기록을 완성했다. 앞선 3경기서 패했던 팀은 이날 표 씨의 '노히트노런'을 위해 몸을 날리며 매섭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4회 2사 후 유격수와 3루수의 잇단 실책에다 몸에 맞는 볼까지 나오며 만루가 됐다. 그러나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최대위기를 벗어난 표 씨는 5회 마지막 타자를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며 5이닝 노히트노런을 완성했다. 팀 타선이 일찌감치 폭발해 12점을 얻는 바람에 콜드게임이 선언되면서 대기록은 앞당겨진 것.

한 이닝에 1, 2점은 거뜬히 나오는 사회인야구서 노히트노런은 사실상 불가능한 기록으로 여겨지고 있고, 그 사례조차 찾기 힘들 정도다.

팀 동료들의 축하세례가 쏟아졌지만 표 씨는 오히려 "내가 잘한 건 10%에 불과하고 동료들의 도움과 운 덕분이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표 씨는 이날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감기 기운에 힘도 없어 선수 구성만 된다면 빠지고 싶었다. 할 수 없이 마운드에 오른 표 씨는 욕심을 버렸다. "시즌 첫 경기서 마운드에 올랐을 때 눈물이 날 정도로 혼쭐이 났어요. 던지는 공마다 안타를 맞으니 자괴감마저 들었어요."

그래서 이날은 욕심을 버렸다. 실점을 7점 내로 막으면 이길 수 있다 생각하고 마운드에 올랐다. 힘을 빼고 던진 투구가 위력을 발휘했다. 마음을 비운 그의 삶이 즐거움을 주듯, 야구도 똑같았다.

표 씨는 중학생 시절 야구선수를 꿈꿨다. 그러나 너무 늦은 시작에 꿈을 접었다. 그래도 야구는 늘 가까이에 뒀다. 증권사에 취직한 그는 회사에 야구팀을 만들고 교류전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운동을 하기 어려워졌다. 간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표 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갔다 와서 간염을 앓았다. 그날 이후 35년간을 만성간염 환자로 살았다. "1980년대 초 만성활동성 간염 판정이 나 군 면제를 받았어요. 입사 때도 간이 좋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병원을 정기적으로 다니며 약도 꾸준히 먹었지만 2년 전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게 됐다. 간염이 간경화로 악화된 것. 표 씨는 그날부터 6개월간 방황했고, 하던 사업도 직원들에게 일임한 채 일선에서 물러났다. "간이 좋지 않아 사업 시 갖는 술자리는 곤욕이었어요. 쉽게 피곤해져 운전도 30분 이상 하지 못했죠. 몸 관리를 했는데, 오히려 더 악화되니 눈앞이 깜깜했어요."

그는 서점에 들러 자연의학 관련 책 100권을 사서 읽고 또 읽었다. "동물은 아프면 굶습니다. 그래서 단식에 들어갔죠. 1주일 단식 후 2주간의 보식을 끝내고 나니 몸이 가벼워졌어요. 병원에 갔더니 다 나았다고 하더라고요. 35년간 달고 다녔던 간염보균자라는 말과 작별을 한 것이었죠."

표 씨는 그때부터 채식했고 '몸과 문화'라는 단체를 만들어 바른 먹을거리와 몸을 살리는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한창 사업을 할 땐 저도 통장 잔고 늘리기, 부동산 평수 늘리기에 몰두하며 욕심을 키웠죠. 근데 욕심을 버리니 오히려 더 많은 걸 얻게 됐죠. 이번에 노히트노런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건강을 되찾고 인생의 즐거움을 비로소 갖게 됐다는 표 씨는 앞으로도 둥근 야구공처럼 살겠다고 했다. 하지만 바른 먹을거리로 건강해지는 삶을 알리는 데는 정열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야구 역시 온 정성을 쏟는 스포츠 정신을 갖고 열중하겠다고 했다. 경기가 있는 날, 가장 먼저 야구장에 도착해 몸을 풀며 팀에 활기를 불어넣는 선수가 되겠다고 표 씨는 자신에게 약속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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